정명훈 &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2013. 9. 24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 곡목]
-베를리오즈 '로마의 카니발' 서곡
-비제 '카르멘' 모음곡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Encore]
스트라빈스키 '불새' 중 Ⅵ. 자장가 Ⅶ. 피날레
베를리오즈. 프랑스 거리에서 만나는 회전목마.
그 회전목마를 타면 피에로 아저씨가 나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 줄 것만 같다. 어느새 회전목마에는 불이 환히 켜지고 까만 밤, 별도 뜬다. 축제의 장. 그 곳엔 무대를 오르기 전 긴장한 무용수도 보이고. 초조해 보이는 줄 타는 소녀도 보인다. 피에로 아저씨는 혼자 즐겁고. 날 이곳에 데려와줬지만 얄미워지기까지 하는 걸 보면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나쁜 피에로 아저씨인 모양. 1부를 보는 내내 난 계속 상상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었다.
회전목마에서 내려서 센느강변을 조용히 거닌다. 연인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속삭이는 그 곳에 외로운 이, 한 사람이 멀뚱히 서 있다. 나를 무사히 데려다 준 후 무거운 발걸음 옮기는 피에로 아저씨 뒷모습. 아저씨의 얼굴 가득 번졌던 익살스럽고 음흉스럽던 미소 대신 눈물이 글썽 맺혀있다. 터벅터벅 발걸음 옮기기도 버거워 보인다.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고. 손 잡고 함께 외로운 길을 걸어가 주고 싶다. 환히 빛나던 회전목마 불이 꺼지고 새벽바람이 차다. 그렇게 2부가 지나갔다.
중간중간 연주자들이 드나들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타악기, 관악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타악기 주자는 다들 상상 속 피에로 아저씨처럼 시크하고 익살스럽다. 팀파니 주자 혼자 연구자 포스다. 관악기는 그들이 서로를 신뢰하는 분위기도, 실력도 정말 부러웠다. 현악기는 영화배우들 같이 멋졌다. 특히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눈이 즐겁더라. 우르르~~ 쿠르르~~ 통통, 팅팅, 퉁퉁, 찌~~~~~잉. 현악기의 연주는 마치 마법의 주문 같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가지 같기도, 든든히 받춰주는 기둥처럼 하나로 소리를 모아 낸다. 그렇게 나무 한 그루 완성.
회전목마와 나무 한 그루. 피에로 아저씨와 센느강. 그리고 여행자, 나. 모두가 가을의 파리에 있다.
2013. 9. 25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 곡목]
-스트라빈스키 '불새'(1919년판)
-라벨 '라 발스'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Encore]
-베를리오즈 '로마의 카니발' 서곡
-비제 '카르멘' 중 전주곡
사막 모래바람 불어오고. 전쟁 피란길의 고단함이 떠올랐다(1990년 8월 2일 나는 쿠웨이트에 살고 있었다. 쿠웨이트-이라크-요르단을 지나는 피란길에 올랐었다).
드넓은 초원을 지나는 기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나.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의 설레던 그때 그 감정이 되살아났다.
타악기 주자들은 오늘도 매력적! 현악기 파트는 어제 받춰주던 역할이었다면 오늘은 화려하게 기교 부리더라. 개인적으로 양일 다 1부 연주가 더 좋았다.
재밌는 에피소드 : 스태프 아드리앙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로 시작된 앙코르. 길 잃고 헤매는 귀여운 스태프. 피아노 옆에 쪼그려 앉았다가 앙코르 내내 그렇게 앉아있다가는 다리에 쥐가 날 거고. 사방에서 그 모습을 보게 될 객석의 수많은 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그냥 확 나가버릴까 고민하던 그. 다행스럽게도 오르간 연주자가 비워둔 자리를 찾아 미소 띠며 객석과 등지고 앉았다가 앙코르 끝나자마자 그는 후다닥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