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스 콰르텟 <죽음과 소녀>
Program>>
Britten - Three Divertimenti for String Quartet
Grieg - String Quartet No.1 in g minor, Op.27
Schubert - 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810 'Death and the Maiden'
처음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앙코르 마지막 곡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네 남자는 최선을 다했고, 함께 진지하게 탐구하고 토의하며 완성한 음악을 차분하게 잘 들려줬다. 이 공연을 위해 치열하게 연습하고 준비했을 네 사람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3층 객석까지 가득하던 관객들을 보며 동분서주하느라 뜨거워졌을 기획사 식구들의 발바닥을 마사지해주고 싶어 졌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온 힘 다해 손뼉을 치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손뼉은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열심히 쳤다.
개인적으로는 1부가 정말 좋았다. 슈베르트보다 브리튼과 그리그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부스 콰르텟 멤버들 모두가 또 한 뼘 성장한 모습과 그 변화가 신선하고 놀라웠기에 오래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나 여기 있어요. 나라고요. 나예요.'
누구 하나 이렇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모난 구석 없이 사포로 매끄럽게, 부드럽게 매만져주었더라. 그래서 더 빛이 나는 무대였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두 사람, 재영 씨와 영욱 씨. 몇 해 전 푸가의 기법을 연주했을 때 나는 재영 씨는 날카로운 소리를, 영욱 씨는 묵직한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은 같은 듯 다르게, 다른 듯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닮아가고 있구나. 앞으로도 함께하면서 지금까지처럼 1 바이올린, 2 바이올린을 번갈아서 하게 될 텐데 더 많은 곡을, 다양한 해석으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연주해주겠구나 싶어서 기뻤다.
승원 씨의 비올라 소리는 사람을 안정시켜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소나무 같았다. 2008년에 국내음악콩쿠르 때도 그랬지만 그때보다 더더더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며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오래 알고 지낸 동생 같고, 쫓아다니며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던 웅휘 씨는 공연 내내 내 마음을 쿵쾅 때리기도 구슬프게도 만들면서 마음에 와 닿는 첼로 연주를 해주었다. 분명히 웅휘 씨의 연주하는 옆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그의 표정을 따라 짓게 됐고, 그 음악에 푹 빠져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다. 거울을 본 것은 아니지만 내 표정이 이렇게 다양한지 미처 몰랐다 싶을 정도로 한 음 한 음에 다 반응하게 되더라.
2부 내내 좀 힘들었다. 소름이 쫙 끼쳤다가, 인상 팍 쓰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가며 불안감을 느끼다가, 눈물짓다가, 희망을 찾아보다가, 좌절하고 포기했다가 계속 마음이 힘들어지는 음악, 죽음과 소녀. 최근에 발매된 루시드폴 곡 중에 돌림노래가 한 곡 있는데 그 곡이 생각났다. 돌고 돌고 돌고 끝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 다행스럽게도 음악이 끝나고 앙코르로 무거운 짐을 좀 덜어낼 수 있었다. 출시될 앨범에 수록되었다고 해서 궁금했던 '아리랑'을 비롯한 여러 곡의 앙코르도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
다음 노부스콰르텟 공연은 손열음 씨와 함께하는 쇼스타코비치. 벌써부터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