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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Aug 22. 2016

개꿈을 기록해보자

개꿈 주의입니다. 말도 안 되고 장황한 글이지만 기록용으로 남겨둡니다.


오랜만에 아주 길고 생생한 꿈을 꿨다. 오버워치를 한 탓에 꿈 세계관이 오버워치(...)라는 것만 빼면 다 좋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과 오버워치(참 없어 보인다.) 세계가 적절히 융합된 그런 꿈이었다.


꿈의 시작은 이랬다. 복숭아를 깎아 먹고 있었다. TV를 보고 있었는데(라디오나 뭐 하여튼 매체였던 것은 확실하다.) 거기에 수천 년은 먹었을 것 같은 나무가 등장했다. 나무는 오랜 시간 양질의 열매를 공급하기 위해 가지가 잘리고 뒤틀리는 등 여러 가지 학대를 당했었고, 최근 그 나무는 자신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졌었다. 한 스님은 여기에 슬픔을 느끼며 자신이 14일간 공양을 들여 나무를 회복하게 하겠다고 했다.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 장면 내에 들어가 있었다.(그래서 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이야기 듣다 보니 그 이야기 속에 내가 들어가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렇다. 그 나무는 세계에서 꽤 높기로 유명한 산 꼭대기에 자라는 나무였다. 오르는 데에만 몇 날 며칠이 걸릴 그럴 산.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스님과 일행이 되어 순례하듯 그 나무를 치료하는 여정에 올랐다. 다행히 그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은 모두 옛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처리가 되어, 시간은 많이 흘렀으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렇게 산의 꼭대기에 있는 마을에 도착하고(오버워치에 등장하는 네팔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번에는 또 무지막지하게 높은 나무를 오르기 위한 구조물을 오른다. 거대한 시계도 달려 있고 그랬던 것 같다. 4800미터 이상쯤 되는 높이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마침내 그 나무의 꼭대기까지 도달한다. 깎아둔 지 오래된 복숭아처럼, 그 나무는 여기저기 상해 있었다.


스님은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또 장면이 방송 장면으로 처리되면서 우리는 가만히 죽치고 있을 수 없어서 산을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한다(미쳤나 봐) 2주간 산을 세 번 정도 오르고, 내리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꿈속에서 나는 반쯤 해탈한 것 같다. 오욕칠정을 돌이켜보며 인생사의 무상함을 깨달았다. 나는 어째선지 (꿈속의 일은 모두 개연이 적다. 어째선지, 어째선지. 미싱 링크.) 일행 중에서 가장 뒤로 처져 있었고. 다른 일행들이 모두 산 위에서 스님을 뵈고 왔다고 한다. 나도 서둘러 구조물을 타고 올랐다.


여기서 정말 난데없이 스님이 젠야타로, 내가 겐지로 바뀐 것 같다. 삼인칭으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기이하기 짝이 없다. 스님은 그냥 사람이었고 나도 그냥 나였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거기 거대한 시계의 바늘에 매달린 채로, 나는 세계가 한 바퀴 도는 경험을 했다(아마도 시곗바늘에 매달려 24시간을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너무 웃기다 자세니 뭐니...). 주마등 같이 스쳐가는 기억들, 생명과 자연의 아름다움 등등을 경험하며, 시계를 지나 다시 나무를 향했다. 나무는 모든 상처가 말끔히 나아 있었다(여담인데, 그 불공이라는 것이 나무에 복숭아를 바르는-...-, 복숭아나무에 복숭아를 바르는 방식이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엄청 감동해서 펑펑 울었다. 계속 울었다. 꿈속에서나 현실에서나 그렇게 울어본 적은 없었다. 펑펑, 꿈이 계속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울음 때문이다.


한편 그렇게 감동받고 뭔가 구원받은 후련한 기분으로 계속 울었는데(툭하면 울었다.) 우는 와중에 서브 퀘스트가 시작됐다. (중간중간에 무슨 스타크래프트 2 플레이 화면도 나오고...  꿈 진행 정말 개판) 나무를 오르는 구조물을 탈론이 무너뜨린 것이다. 꿈이 좀 더 진지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는 내내 감성적이었던 나는 또 울면서, 이번엔 감정이 격해져서 울면서 악당을 추격했다. 어째선지 중간에 아이언맨 시점으로 바뀌어서(이젠 마블이다.) 그 떨어지는 구조물(거의 송전탑처럼 생긴)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막으러 갔다. 고도 제한 운운하다가 아이언맨은 어디론가 생까버리고, 나는 1 코어짜리 부스터로 22 코어를 가진 우리 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하고 도발했다. 무슨 개념인지 모르겠으나, 그 구조물에 부스터를 달아서 미끄러지게 하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 있다는 뜻 같았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미끄러지며 가속도 받는 구조물을 막으려면 그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니, 내가 개소리를 했다느 것을 알고 얼른 막으러 갔다. 미끄러지는 길목에 EMP 장비를 설치하고(와이파이 공유기 모양...) 탈론 놈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먼저 그것을 쥐어뜯으며 부셨다. 그러다 하나를 놓쳐 장비가 작동하고, 나는 그것이 EMP 장비인 줄 알았더니 구조물에 달린 여러 기계로부터 데이터를 뺐는 장비였다. 어쨌거나 장비는 뺏기고 악당 놈들이 그걸 쫓았다. 트레이서가 그걸 쫓아갔고(정말 오그라들기 그지없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나는 나머지 애들을 때려잡으러 갔다. 엄청 높은 산에서 춥고 바람 불고 눈으로 가득한데 빌딩만 한 구조물이 산 꼭대기 순례자들을 위한 마을을 때려 부수며 미끄러지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자잘한 서브 퀘스트들이 계속 발생하는 가운데,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 가지 퀘스트를 해결하며 탈론의 음모를 저지했다. 일을 마치고 다시 멤버들끼리 모여 지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웃기는 것은 이때부터 나는 어떤 관찰자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이야기에서 동떨어져버렸다. 리퍼가 구석에서 벽에다가 대고(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 아니 애초에 탈론이잖아... - ) 탁구를 격렬하게 치고 있었고, 트레이서가 자신이 임무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알리면서 꿈은 종료. 약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자면서 꾼 꿈이지만 스펙터클하기 그지없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내용이지만 꿈속에서 2주가 넘는 시간을 겪어본 것은 처음이고, 또 이만큼 생생한 꿈도 오랜만이라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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