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대선 토론에 부쳐.
예컨데 비혼주의자에게 결혼 제도라는 것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일테다. 비혼주의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하고, 그것이 보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으로 규정된다. 비혼주의자는 명절이면 "언제 결혼할 생각이니?", "애인은 있니?" 같은 잔소리에 시달려야 하며, "원래 그런 말 하는 사람이 가장 빨리 결혼하더라." 같은 속없는 혐오 발언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삶을 살며, 돌려 받을 일도 없는 축의금을 내며 살아야 할 것이다. 뭐, 다 무시하고 자신의 삶을 걸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던 어느날, 그 어떤 비혼주의자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결혼과 연애를 모두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상상해보자. 과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 제도로 말미암아 국가는 연애 감정을 느끼는 모든 사람을 부도덕한 존재로 규정하며, 사사로운 연애를 금지한다. 또한 대부분의 국민은 출산을 위한 가축 취급을 받으며, 사사로이 섹스나 연애를 하거나, 몰래 아이를 키우거나 하는 일은 모두 엄하게 법으로 금지된다. 모든 출산과 양육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 섹스는 공장식 농장의 가축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연애는 부도덕한 것, 사랑은 혐오스러운 것, 사랑하는 존재는 지워져야 할 것으로 취급받는다. 마침내, 오직 사랑하지 않는 이들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법의 보호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들은 지워져야 할 것,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결혼이라는 제도는 없다. 두 사람의 결합을 인정하는 제도도 없다. 외려 들키지나 않으면 다행인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사람들은 알음알음 지하로 숨어들어가서도 사랑을 나누고, 저항했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 했다. 더러운 욕망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가증스러운 존재들은 정의로운 국가의 철퇴 앞에 모두 사라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로 잡혀 갔으며, 아이들을 뺐아갔고, 서로를 고발하고, 때로는 무리를 지어 평범한 국민들이 민중 재판을 열어 공공연히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그래도 돌아갔다. 어쩐지 그 상상속 세상은 지금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2017년의 대한민국은 그런 세상이다. 동성애자들은 이미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동성애자들만 그럴까.
*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편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적 허용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p.s. 브런치 태그 검색에 동성애, 퀴어 등이 없는 것은 시스템적인 이유일까. 검열일까.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닐텐데. 추신을 쓰다보니 태그가 가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