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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Apr 26. 2017

스케치

무기력에 관한 스케치, 습작.

열심히 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매일 죽음과 같은, 혼곤한 무의식에서 깨어나며 그런 생각을 한다. 전날 밤, 새벽까지 게임을 하던 사람의 생각이다. 연거푸 담배를 피우며 생을 태우던 사람의 각오이다. 참으로 그럴싸하다.


늦잠을 자는 날이면 하루의 절반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도시는 아주 느리게 박동하는 심장처럼 사람들을 주택가에서 내보내고, 도심지로 빨아들인다. 지저귀는 새 소리나 일찍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의 웃음 소리를 듣다보면 그 충만한 생동감에 조바심을 견디기 어렵다. 햇살이라고 쬐어 볼까 싶어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간다.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는 어느 평범한 하루다.


대학에 들어온 뒤로,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거나 규칙적으로 생활한 경험이 드물다. 할 일 없는 오후는 게임과 담배로 채워지고, 가난한 마음의 곳간은 언제나처럼 먼지가 가득하다. 아, 게임도 게임 나름이지. 경쟁의 성취 밖에 없는 게임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나는 이리도 헤매고 있을까. 새상은 넓고 해야할 게임도 많은데, 나는 왜 롤이나 하고 있을까. 불규칙한 식사와 불규칙한 수면, 나는 아직도 살아있지 않다.


운동을 한다. 초조한 마음이 들면 늦잠을 잔다. 낭비한 하루를 어떻게든 보상하려 몸부림 친다. 글을 쓰려고도 하고, 집을 치우려고도 한다. 시도만 한다. 그러다가 정말 조바심을 이기기 어려운 날에는 운동을 한다. 나약한 육신과 나약한 정신. 십분 남짓한 운동 끝에는 무의미한 호흡만이 남는다. 매일매일 갱신하는 허리 둘레와 허벅지 둘레. 몸도 마음도 우울하다. 거울 앞에 선 나의 나신이 부끄럽다. 게으름과 무기력이 덕지덕지 달려 출렁거리는 몸. 살덩어리. 육체. 욕망의 반대편에 위치한 나의 현상.


애매하게 열이 오른 몸은 잠에 들기를 거부한다. 한 시간 정도 눈을 감고 기다려보지만 잠은 좀처럼 올 기미가 안 보인다. 수면 유도제와 항히스타민제를 한 알씩 먹는다. 하루종일 긁지만 잠들기 전은 더욱 심하다. 약효가 올 때까지 또다시 벅벅 긁는다. 피가 맺히고 각질이 허옇게 뜨도록 긁는다. 그러다가 또 잠이 든다. 다시 컴퓨터를 켜지 않았으니 용하지 않은가.


하루는 짧고, 한 달은 더 짧다. 나는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흘러가는 시간을 본다. 명멸하는 의식 속 모든 기억들이 희미하다. 결국 나는 2.4초를 사는 생물이 아닌가. 지금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루에 한 끼, 돈을 아껴 음식을 시켜 먹는다. 오 분만 걸으면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식사를 할 수 있을테지만, 내게는 그 오 분을 걸을 겨를이 없다. 팔 다리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정확히는 팔 다리를 움직일 필요를 못 느낀다. 몸을 길게 뻗어 담배를 집는다.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무리하게 늘어난 근육이 뭉쳐버린다. 우습다. 담배를 피며 고통을 달랜다. 하루는 분명히 뜬 눈으로 보냈지만 감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 했는데 벌써 해가 졌다.


밤이 온다. 보상할 수 없는 허무감을 허우적거리다 해가 뜰 쯤 잠에든다. 또 다시 늦은 하루가 시작된다. 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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