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윤 Jun 10. 2017

편지

어떤 산문.

석 달? 두 달? 정확하게 모르겠네요. 굳이 찾아보고 싶지도 않고.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60일이라고 합시다. 60일은 긴 시간입니다. 숨쉬는 것보다 더 쉽게 시간을 떠내려 보내던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과외를 가다가, 당신이 보낸 메세지에 한참을 속으로 소리질렀습니다. 비명이 새어나갈리는 없을텐데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럼에도 미련을 못 버려서, 미련하게 여기 서있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당시에 그게 싫다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못난 문장을 적으면서 나는 한참을 속으로 울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기분입니다. 그 때, 나는 그렇게 미련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으니까요. 

나는 당신이 그 때로부터 몇 주전, 내게 했던 이야기로 들떠 있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들뜬만큼 가슴 한 구석에서는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경험이 낳고 기른 부정적인 예감 증후군. 한참 행복하고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타나는 불안감을 늘 틀리지 않았습니다. 꿈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 불안이 오랜만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설마. 아닐거야. 믿어. 나는 그보다는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요.

뚝, 다음날. 침묵은 길었습니다. 상상력은 관계의 적이라고 하지만 메세지 너머로 전해지는 당신의 혼란스러움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또 한 번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역사라니. 정말 싫지만 역사라고 해야겠습니다. 거기서 나는 무언가 배워야만 했으니까요. 또 저는 우두커니 서있었습니다.

당신의 그 청천벽력 같던 메세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미련이 가득한 답장을 남기고서, 나는 죽어가는 마음으로 당신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냈습니다. 네. 그렇지만 그러도고 몇 번이고 당신의 SNS 계정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혹여 내 이야기를 하진 않을까 싶어서. 당신이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알고 싶어서. 잠이 안 오는 새벽이면 늘 그러곤 했습니다. 네, 제 불면증의 30%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따가 다시 말하겠지만.

누군가 만나서 당신을 미워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너무했다고 나는 이야기 했습니다. 그 사람도 제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여줬습니다. 그렇게라도 당신을 잊고 싶었습니다. 미워하게 되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당신의 컬러링이었던 노래를 수백번 들으며 그런 줄 알았습니다. 당신과 닮고 싶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찾아 들었던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제 노래를 들어도 괜찮네, 그렇게 오만하게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시계는 근면하게 움직였고, 저는 거기에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며 상처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요즘 아픕니다. 예전같았으면 이런 얘기도 안 했을 것 같지만.... 당신의 지분이 30% 정도 있습니다. 불면증도 그렇고요, 막대한 스트레스로 인한 몇몇 신경계의 이상 징후들도 그렇습니다. 당신 때문에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정말로요.

그래서 당신이 참 밉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당신은 참 밉습니다. 나는 지금도 당신이 밉습니다. 두 번인가요, 세 번인가요. 이번은 네 번째인가요. 당신은 언제나 그렇듯 또 눈부신 미소와 함께 불쑥 나타납니다. 이번엔 조금 오래 걸렸네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건방지게 말입니다. 그 미소 앞에서 나는 또 벙쪄버리고 맙니다. 길을 가다 만난 태양은 여전히 눈부셔, 제가 별로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너무 미워요. 지금도 울고 싶습니다. 나는 그렇지만 당신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당신은 자기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내가 아파하기 전부터 당신은 아파왔어요. 나는 그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없었습니다. 무기력했습니다. 그럴 자격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마저도 안 된다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이 아프지 않는게 내게는 제일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그리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도 웃어보여야 했는데, 그게 참 힘들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그 자체로 당신에게 부담입니다. 그래서인지 웃어보이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평상시라면 그저 활짝 웃기만 했을텐데, 저도 인간인지라 그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 손가락에 밖힌 가시가, 오늘따라 유달리 저를 콕콕 찔러서 그랬습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면, 당신은 그로말미암아 스스로를 검열했으며, 혹은 내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사랑을 자신이 돌려주지 못함을 미안해 했습니다. 나는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으며, 좋은 친구이기도 했으며, 제가 정말로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내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가릴 수는 있겠죠.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작년 말쯤에는 자주 그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당신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미안해요.

지난 시간들을 떠올립니다. 당신이 내게 사과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아니에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사과의 이유가 되나요. 당신에게 어떤 걸로도 사과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한 번 안아줬으면 해요. 내가 이렇게 아팠다, 이런 이야기도 잘 안 하는데 굳이 툴툴거렸던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그게 궁금합니다. 당신이 그 때 보였던 웃음이나, 내게 속삭였던 말들이, 그 순간에만이라도 진실이었는지. 그렇다면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고, 당신이 나를 못 견뎌 떠나도 좋고(아니, 좋진 않아요. 참을 순 있겠다.) 혹여 역사가 반복된다고 해도 좋습니다. 저는 또 기꺼이 당신의 내민 손을 잡을 것입니다. 그저 저는 당신을 사랑할 따름입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바라는게 있다면, 위의 저 궁금증을 풀었으면 하고, 만약에 기회가 조금 남는다면, 당신과 쭉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나를 '찾지 않는다'니. 그건 너무 잔인한 처방이지 않을까요? 지난 두 달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더 매달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그렇지만 잘했다고 생각해요.)


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서 줄여야겠습니다. 결국 저는 어리광을 조금 부리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오늘 빛나는 미소와 함께 나타나서 너무 기뻤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만났으면 합니다. 글로는 다 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복잡한 기분이지만, 웃는 얼굴로 편지를 마칩니다. 조만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Sincerely,

2017.06.10.

지윤씀.

 

작가의 이전글 스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