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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Jul 15. 2017

일상 되찾기

1.

내 일상은 파괴된지 오래다.

라고 말하면 굉장히 거창하지만 사실 방구석 폐인의 삶을 보낼 뿐이다.

강제 개행으로 이루어진 글....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정말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11시 반에 귀가, 씻고 12시 반쯤 수면, 7시 ~ 7시 반 기상, 등교. 그리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 하루에 세 끼를 꼬박꼬박 먹었으며-헌신적인 어머니에게 감사를- 옷은 매일 세탁된 것을 입었고-마찬가지로 어머니께 감사를- 집에 들어오면 바로 샤워를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체육 시간에는 힘껏 땀을 흘렸고, 쉬는 시간에도 활기차게 뛰어 다녔다. 그래도 살은 10Kg나 쪘지만.


사실, 나는 규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기회만 닿으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게임을 하고, 낮잠 저녁잠 할 것 없이 즐기며, 놀게 두면 한정없이 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건 고등학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때는 나를 강제하는 것들이 구조적으로 잔뜩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물론 야자를 하루라도 땡땡이 친 날이면 관성이 무너져 다음날 야자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 바로 이 관성이 문제다. 습관의 중요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니, 작가니, 종류를 막론하고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항상 규칙적인 생활과 연습을 강조한다. 고3 때에는 신승범 선생님의 인강을 들었는데, 그 때 아마 신승범 선생님이 '관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요약하자면 한 번 놀기 시작하면 계속 놀고 싶으니까, 공부에 매진하는게 가장 쉽다는 말씀이었다.


관성은 운동하는 물체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 운동하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을 말한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속 열차를 멈춰 세우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든다. 멈춰 있는 바위를 굴러가게 만드는 데에도 엄청난 힘이 든다. 새가 중력을 거부하고 훨훨 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일일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번 좋은 습관이 들면 그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나쁜 습관 역시 한 번 생기면 뿌리 뽑기가 어렵다. 우습게도 좋은 습관은 나쁜 습관보다는 쉽게 파괴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매일같이 BHA를 하고 세안을 하다가, 하루, 단 하루, 과음하고 들어온 날 걸렀을 때. 내 습관은 점점 불규칙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사라져버렸다. 건강보충제를 챙겨 먹던 것도 하루 걸러버리면 다음날도 거르기가 너무 쉽다. 매일 무언가 내게 도움 되는 일을 하기는 참 어렵게 느껴지는데, 왜 그걸 하루 쉬는 건 이렇게 쉬운지 모르겠다. 내게 관성은 나 좋을 대로만 작용하는 못된 녀석인가 보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나는 내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먹을 것이며 무엇을 입고, 뭘 할 것인지 모조리 선택해야 했다. 나는 주저없이 놀았다. 대학교 가서 놀면 된다던 부모님의 말씀에 아주 충실히 따랐다. 결과는? 삐빅. 전혀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3년이 흐르고, 이제 4년째다. 내 삶은 그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좋은 습관은 언제든 박살나버리는 위태한 삶. 정말이지,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다. 아니, 내가 간사하다.


나는 그래서 요즘 일상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 하나씩 시작해야 할 것이 많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신경정신과에 갔을 때(그러고보니 병원도 꾸준히 안 다니고 있지 않은가.)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의무가 없다고 했다. 직장을 다니면 죽도록 직장에 가기 싫어도 직장에 가게 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오늘 아침도 출근하기 싫었지만, 자신을 강제하는 의무가 거기 있기 때문에 출근하게 된다고 했다. 반면 나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을 것들로 가득찬 내 삶에는 어떤 의무도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좋은 습관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라고. 운동도 좀 하고.

운동은 헬스장 등록 비용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니, 나는 다시 작은 것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적어도 아침 9시에는 일어나기. 빨래 그때 그때 돌리고, 그때 그때 널기. 귀찮다고 배달음식 시켜 먹는 것 줄이기. 귀찮다고 굶지 않기. 벌써 몇 가지는 긍정적인 조짐이 보인다. 쭉 이어나갈 수 있다면 내 삶도 조금은 바뀌겠지. 


일상을 되찾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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