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윤 Aug 24. 2016

커밍아웃?

성, 젠더, 연애/성적 지향 이야기 (2)

 "시스젠더 헤테로"에 이어서, 계속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연애/성적 지향을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하찮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많은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내 구성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며,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 않은 그런 것. 다만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을 좀 더 명확하게 인지하고. 시스젠더 헤테로 사회에서 상대방이 내 지향에 대해 미리 알고 존중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솔직히, 우리 사회나 문화는 시스젠더 헤테로가 아닌 사람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폭력적이다. 일단 불평은 접어두고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어쩌다보니 새벽에 애인님과 내 연애/성적 지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전날 저녁, 나는 애인님을 앞에 앉혀두고 커밍아웃을 했다. 연애 초반, 그가 내게 무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젠더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젠더가 남성이라고 하면, 여성 젠더와 구분지어지는 것이 있다는 건데, 그런 게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내가 신체적 성이 남성이고, 신체적 성이 여성인 사람에게 연애와 성애를 느낀다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젠더는.... 젠더에서 남성과 여성이 무엇이죠? 젠더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성이라고 하는데,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요?"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을 했다. 내게 젠더라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물론 관습적으로 성별 고정관념을 주입받은 바 있기 때문에, 흔히들 말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남성성이니 여성성이니 하는 것들을 명확히 구분해내지 못한다. 내 젠더가 '남성'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단 사전적 정의를 따르면, 젠더는 사회적 성이다. 사회에서 규정한 성.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만을 규정하는 사회고, 각각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굉장히 뚜렷한 사회다.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젠더상과는 모두 거리가 멀다. 나는 각각의 특성을 고루 가지기도 하고, 또 모르는 부분도 많고. 그래서 지금은 그냥 퀘스쳐너리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눈에 나의 젠더가 남성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정말 도통 모르겠다.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저는 다자연애 지향이에요. 저는 당신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당신을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해요. 당신에게서 그 사람을 보고, 그 사람에게서 당신을 봐요. 우스운 얘긴데, 그 사람을 만나고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어요."

 이어서 이렇게도 말했다. 무성애자인 내 애인에게 내 젠더나 생물학적 성은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이건 꽤 큰 문제다. 전에도 애인에게 내가 다자연애 지향인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은 있었다. 그랬더니 그도 나름대로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담담하게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새벽에 나와 함께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내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싫다고.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싫다고.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애인님도 내가 나를 부정하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겠다고 했다. 내가 무성애자인 그를 이해하고자 한 것처럼.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걸음마를 떼듯 불안불안하기도 하지만 더욱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 비하면 나머지 것들은 "사소한 것"이니까. 애인님도 참 대단하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멋진 사람이다.

 

 나는 모노가미(적절한 용어가 맞는지 모르겠다.)가 아니라 폴리아모리의 연애지향을 가지고 있다. 좀 더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누가 뭐라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렇게 커밍아웃함에 있어서 걱정되는 것도 없잖아 있다. 타인의 시선과 비방. 그리고 혐오발언.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거 아냐?"라든가, "바람피는 거 아냐?"라든가, "네가 잘 몰라서 그런거 아니야?" 등등... 폴리아모리를 다룬 기사에는 늘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따위의 혐오 발언이 달려있다. 나와 입장이 다르고 연애 지향이 다른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이런 혐오발언을 내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설득시켜야 할 이유나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존중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쓴다. 또 일기장 마냥 삶의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고. 새벽이라 이만 줄여야 할 것 같다.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더 있는 사람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영어긴 한데...

https://www.morethantwo.com/polyamory.html

작가의 이전글 시스젠더 헤테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