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불쑥 찾아온 가을
나는 가을이 오면 냄새를 맡는다. 대부분 사람은 "그게 뭐야."라는 식으로 넘기지만 "가을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끼리는 공감하곤 한다. 다른 계절의 냄새는 맡을 줄 모르지만, 유독 가을만 되면 '아! 가을이구나!' 싶은 냄새를 맡게 된다. 퀴퀴한 방구석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 재낄 때. 무심코 들이켠 아침 공기가 더는 뜨뜻미지근하고 눅눅하지 않을 때 말이다.
가을 냄새는 코가 막혀도 꽤 맡을 수 있다. 잠을 늦게 자서인지, 오늘 아침도 알러지 반응으로 고생하고 있다.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르고 점막이 팅팅 부어 도통 아침밥 냄새를 못 맡아도, 가을의 상쾌한 냄새는 맡을 수 있다. 마치 모든 존재가 무자비한 여름의 압제에서 벗어남을 기뻐하는 환호성 같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맡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울림. 가을 냄새는 그런 냄새다. 건조하고 찹찹해진 만물이 풍기는 기쁨의 냄새.
한 가지 더. 가을 냄새는 괜시레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냄새기도 하다. 아침잠을 번쩍 깨우고, 지난 가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냄새다. 가을 푸른 하늘에서 묻어 나오는 것일까. 가을 냄새를 맡으면 목감기나 아토피로 고생할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고, 곧 찾아올 겨울이 반갑기도 하다. 선선한 바람의 손길에 오싹해져 긴 옷을 찾다 보면 지난 추억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길어진 밤과 새벽 속에서 내 것 아닌 사랑에 눈물짓기도 하고, 끝을 향해 다가서는 모든 것에 막연한 애도를 표하기도 한다. 센티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영하의 기온을 만취한 채 해집고 다니던 것도 떠오른다. 아침 이불 속 따뜻한 온기와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이 생각나고, 부드러운 옷감 속 조용한 온기를 머금은 애인이 생각나기도 한다. 가을은 사소한 기억들이 훨씬 끈끈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묶여 있는 계절이다.
언제고 산책을 나서야겠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어본 지는 또 왜 이렇게 오래되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