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이야기5

세상의 죄악이 깊어지면

by 구대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전쟁 참상.png

전쟁의 끔찍함이 너무도 사실적이라 내가 이 시대에 살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감이 든다.

전쟁은 인간이 만든 가장 거대한 재앙이며, 그 속에서 인간성은 가장 먼저 파괴된다.


노르망디 해변에서 총알에 스러져간 병사들, 포탄에 날아간 사지, 고통과 참상에 울부짖는 목소리들.

이 장면들은 단순한 영화적 연출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벌어진 지옥의 잔인함이었다.


나는 연재해서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옥은 사후 세계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이미 어떤 지옥의 한복판에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지옥의 기본값은 고통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대가 가장 지옥에 가까웠을까?

예컨대 19세기 콩고 자유국의 참상은 제국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고무 채취량을 채우지 못했다고 주민의 손목과 발목을 잘라 죽이는 만행,
아이들을 인질로 삼아 어른들에게 끝없는 강제를 가하던 구조.
그 땅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


또 조선 후기에 신분제가 극심했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했던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억울한 백성은 관아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권력이 약자를 밟고 올라갔다.

심지어 억울함을 하소연할 권리조차 신분이 갈랐다.


억울함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사회는 꼭 전쟁이 아니어도 지옥이 된다.

20세기 초반의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종주의가 정당화되고 정치가 광기에 휩쓸리던 시절,

독일의 나치 정권은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 연기로 사라진 수많은 생명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의 최악을 보여준다.


인권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억압하고, 진실을 덮고, 억울함을 방치하는 사회.
이런 요소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그 사회가 지옥으로 변하게 된다.
죄악에 침묵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부조리를 보더라도 고개 숙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옥의 불길은 더 크게 타오른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는 순간 폭발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시민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은 굶주림과 불평등, 귀족의 탐욕으로 한계점에 몰린 민중이

결국 만들어낸 거대한 반격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방식으로 최악의 지옥을 만들었다가

오히려 지옥을 ‘강제 리셋’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우리가 지옥을 덜 겪기 위해 할 일은 분명하다.


타인의 고통을 남의 일로 넘기지 않는 것.
억울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
작은 부정이라도 외면하지 않는 것.
우리가 공동선과 정의를 외치는 이유는 고결해서가 아니라,
더 깊은 지옥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몸부림치는 생존 본능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의 "지옥 회피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작가의 이전글잠시 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