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어떤 리더가 필요한가?

완장을 차도 변하지 않는 사람

by 구대은

완장이 드러내는 본성

좀 오래된 영화인데 조형기 주연의 '완장'이란 영화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완장’을 채워주면, 말투가 바뀌고 태도가 달라지고 눈빛이 서늘해진다.
조형기는 저수지 관리인 완장을 찼다. 그 완장 하나로 저수지에 오는 모든 사람을 통제하려 했다.

완장은 무형의 장식처럼 보이지만, 그 무게는 사람의 본성을 벗기고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이 영화에서 완장은 단순한 물리적 상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명령할 권리’를 주고, 타인에게는 ‘복종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문제는 평범했던 사람들조차 이 ‘작은 권력’ 앞에서 스스로를 잊는다는 것이다.


권력은 뇌를 바꾼다 — 공감의 마비

미국 스탠포드 감옥 실험(Philip Zimbardo)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역할’만 바뀌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스스로를 교도관이라 믿고 잔혹해졌다.
권력은 단순한 지위가 아니라,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강화시키는 심리적 독이다.


권력과 구조 — 타락을 정당화하는 시스템

조직과 제도는 위계에 의해 움직인다.

권위주의적 권력자에게 작은 권력이라도 위임받은 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무도한 잘못을 하고도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도구적 행태를 보인다.
이러한 구조는 인간의 본성을 더 쉽게 권력에 빠지게 만들고, 민주주의적 책임을 회피하게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과 일본의 2차대전 전범들의 증언이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의 존재

하지만 모든 사람이 권력에 취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완장을 차도 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맡은 자리를 ‘역할’로 인식하며,

자신의 역할이 잠시동안 주어졌을 뿐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이들은 권력을 두려워할 줄 알며, 그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권력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사용한다.

누군가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000에서 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000입니다."


왜 이런 사람이 권력자가 되어야 하는가?

권력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타인을 명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지키고 돌보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완장을 차고도 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권력을 감당할 자격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무릎 꿇리는 대신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권력자의 자질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권력에 심취한 사람은 타인을 억압하고,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적 권력자는 모든 걸 혼자 다 할 수 있는 ‘만능인간’이 아니다.
그는 다양한 사람과 함께 일할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을 보는 눈,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안목,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존중의 태도를 갖춘 사람이다.


권력자의 진짜 능력은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자의 ‘능력’은

타인을 도구가 아닌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권력이 단지 민주적 공동체에서 필요한 리더적 '역할'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그래서 완장을 채워줘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에 대한 역할과 책임,

그리고 타인의 대한 존중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서 가능성을 보고,
그렇게 인재를 알아보는 객관적인 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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