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레시피_욕심에서 자유롭게 사는 방법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나는 참 욕심이 많다.
특히 '견물생심'이란 말처럼, 남이 하는 걸 보면 나도 따라서 덩달아 욕심을 내게 된다. SNS를 잘 안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인데, SNS를 하다 보면 가만히 잘 살고 있는 '나'를 굳이 '남'과 비교하게 된다. 남이 하니 나도 하고 싶고, 남이 먹으니 나도 먹고 싶고, 남이 가니 나도 가고 싶어지는, 욕망의 무한궤도에 올라탄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이는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심리적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잠들지 못하고 좀비처럼 누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구경하고 욕심내는가. 물론, 다음날이면 내가 뭘 보고 뭘 샀는지 까맣게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오늘밤엔 그냥 잠들 수 없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불나방처럼 바야흐로 '욕망의 시대'에서 우리는 욕망의 불꽃으로 날아가고 있다.
이런 나에게 어둠 속 등불처럼 귀감이 되는 말이 있는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마라!"
어디에서 본 건지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라캉의 '욕망이론'에서 나온 말임은 나중에 알았다), 이 말에 나는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원하고 욕심부리던 게 그래도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 줄 착각했는데, 욕심조차 내 것이 아닌 남들의 것을 베끼고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나는 참으로 허무했다. 욕심에 허덕이던 내게 미안하기도 했다. 이 말에 정곡을 찔리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욕망의 불꽃으로 향하는 속도를 줄이게 됐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깊은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반복해서 들으며...).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은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그들의 모습이 욕심 많은 나의 모습과 너무나 겹쳐 보여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이고 내가 그들보다 티끌만큼도 나은 점이 없지만, 상담사라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하며 자주 하는 비유가 있다.
어린시절에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면 자주 하는 개인기 중 하나가 저글링이었다. 즉흥적으로 눈앞에 있는 물건을 집어서 노래를 부르며 저글링을 하셨는데 나는 그걸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주로 과일로 많이 하셨는데, 처음엔 한 개로 시작했다가 이윽고 두 개로 늘렸다가 다음엔 세 개로 늘려서는 손과 눈을 바쁘게 움직이셨다. 그러다 네 개까지 늘어나면 손과 눈이 엄청 바빠지지만 과일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결국 과일들은 바닥에 떨어지고 저글링은 끝나고 만다. 이 걸 보며 배운 게 하나 있다.
손은 두 개이고, 잡을 수 있는 과일은 한계가 있다는 것. 다른 과일을 잡으려면 손에 든 과일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나는 이 것이 아직까지도 나에게 유효한 인생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잘 안 되서 고민이라는 내담자에게 내가 묻는다.
"저글링을 보통 몇 개까지 할 수 있을까요?"
"한 3개 정도 아닐까요? 정말 잘하면 4개까지 되려나?"
"그러면 지금 OO님이 하고 있는 일은 몇 개나 되나요?"
"하나, 둘, 셋... 네 개가 넘네요. 제가 이미 많은 걸 하고 있었네요..."
욕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삶의 동력일 수 있다. 다만 욕심에 매몰되어 지금의 내가 힘들게 무리하고 있다면, 그 욕심은 나에게 해로운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을 내다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알고보니 남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욕심은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당신의 저글링은 어떤지 묻고 싶다.
몇 개를 손에 집었는가, 몇 개를 더 욕심내고 있는가?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그 중에 무엇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가,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것인가?
헛된 욕심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욕심을 지속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삶의 모습이 묘하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