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안녕
스물아홉 여름의 직전, 퇴사를 선포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밤새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출근하자마자 부장님께 찾아가 말했다. 똑바로 부장님을 쳐다볼 순 없었다. 대리로 진급한지도 얼마 안 됐고 그것도 남들보다 1년 빠른 특진이었다. 뭘 잘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잘하라고 승진시키자마자 그만두겠다라니… 내가 생각해도 경우가 아니긴 했다. 어떻게 생각할지 뻔히 짐작이 돼서 더 죄송스러운 마음에 말하는 내내 숨이 가빴다.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하는데도 심장은 전력질주라도 하듯 내달렸고 얼굴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아..."
한숨과 함께 부장님은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몇 초간의 정적.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공기의 무게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너무 무거운 나머지 이 정적이 1초라도 빨리 깨지길 바라며, 부장님의 입술만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말해주길! 1초, 2초, 3초… 초침은 째깍째각 사람 맘도 모르고 천천히만 흘러갔다. 바쁘게 움직이는 회의실 바깥과는 달리 회의실 안만 유난히 느리게 느껴졌다.
“아쉽다…”
오랜 침묵을 깬 부장님의 대답. 여러 의미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에게도, 부장님에게도, 나에게도 여러모로 아쉬운 선택이라는 뜻이겠지. 이후로 몇 번의 대화가 더 이어졌고 부장님은 어떻게든 나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난 이미 굳게 마음먹은 뒤였다. 결국 좀 더 생각해보고 다음 주에 상무님과 다시 이야기해보기로 했지만 아마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상무님은 더 섭섭해할 거라는 부장님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마음에 밟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첫 발을 디뎠다. 꿈이 현실이 되는 첫 발.
언젠가 이 순간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가고 싶어 안달난 곳을, 운 좋게 좋은 회사 좋은 부서에서 월급 잘 받으며 다니고 있는데도 굳이 제 발로 나오겠다니…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정말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