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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효창공원까지

혼자서 걷다 보면 분노도 누그러지는 듯

by 하리하리


요새도 더위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역대급 더위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데요. 이런 날씨에 걷는다는 건 미친 짓이지만 어제 저는 굉장히 걷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제 안에 갖고 있던 분노가 사그라들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결국엔 제 안에서 모든 답을 찾게 되니까요. 8월의 첫 날부터 저는 같이 일하던 곳에게 약간의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제가 아직 못나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그들이 저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고 사정할 정도로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4월 즈음부터인가요? 저는 미플이란 일자리 카페에서 강의를 해 왔습니다. 유료로 하는 거 말고 서울시의 일자리 예산을 받아서 매달 3회씩 하는 무료 강의의 기회를 얻어 왔습니다. 물론 무료였지만 그 강의에 대한 강의료는 서울시에서 제공해 줬습니다. 매달 꼬박 꼬박 3회를 다 한 것은 아니었지만 1회 이상씩은 강의를 해 왔습니다. 퇴사한 저에게 거기서 책정받는 강의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말에도 그 쪽 매니저님께 이번 달 강의는 언제 할까요? 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 왈, 다음 달은 새로운 강사님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게 어떨까요? 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조금 아쉬웠지만 충분히 새로운 강사님들도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감했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불현듯 막상 이렇게 말해 놓고 네임드에게 강의 주는 거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들었습니다.


5월쯤 한국 직업 방송 주관으로 미플에서 촬영이 있었습니다. 취업 공개 강의를 하는 영상을 찍고 그 영상에 얼굴 마담으로 나올 강사님까지 섭외가 완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저에게 한 마디 언질도 없이 위포트에서 강의하는 유명한 강사님이 방송에 출연하셨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똑같이 거기서 취업 강의하는 사람이고, 제가 알기로는 강의 듣는 수강생들의 반응 면에서도 제가 더 낫다고 알고 있고. 저 덕분에 아프리카TV 애청자들이 미플 플러스친구 등록을 해 그 친구 수가 30% 이상 올라갔다는 얘기까지 저에게 해 줬으면서 그런 기회에 대해 저에게는 단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들어봤습니다. 방송이라 얼어서 그러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알 법한 콘텐츠로 강의하십니다. 콘텐츠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선 '식상한 콘텐츠는 죽음'이란 믿음이 있습니다. 아니 몇 년 전부터 돌던 내용과 로직으로 뻔하디 뻔한 강의를 하는 게 답답하기까지 했습니다. 수강생들이랑 소통은 하나...? 이런 의문도 들었죠.


아, 제가 이 강의를 왜 듣게 되었냐구요? 그 방송 할 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어서 머릿수를 채워야 했습니다. 그 방송 PD님 말씀이 압권입니다. "유명한 강사님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기회 흔치 않습니다." 라면서 저에게 같이 듣자며 권유하셨습니다. (그 강의는 서울시에서 매월 3회씩 강의하고 일자리 예산을 떼어서 강사에게 주는 그 기회를 방송으로 돌린 것입니다. 한 마디로 카페 홍보와 강사 홍보, 촬영을 서울시 예산을 활용해서 써 먹은 케이스입니다) 교육 콘텐츠에서 강사가 유명하다고 그 강의가 좋다는 기준은 어디서 나오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 강사님 위포트에 입성하셨고, 그 위포트란 플랫폼 자체가 대안이 없이 취준생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고를 수밖에 없는 마당에 거기서 강의하는 강사면 무조건 좋은 강사인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그 날도 저는 카페에서 일을 마치고 신촌에서 효창공원까지 걸었습니다.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걸으면 우리 집이 바로 나옵니다. 터덜터덜 걷다 보니 처음에는 분노와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냥 나의 잘못이구나.. 그냥 내가 유명하지 않아서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고 유명세만을 위해 일하진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육업에 종사한다고 하는 사람이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와 콘텐츠, 철학을 고민해야지 어떻게 하면 mainstream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과 똑같은 길을 걸을지 고민하는 것은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 많은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주어진 하루 하루에 충실히, 열정을 다해 일하고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세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캠퍼스잡앤조이에 매달 쓰던 칼럼을 스크랩해 간 강릉원주대학교에 연락을 해 강의를 할 기회도 얻었고, 아프리카TV 자기소개서 라이브 방송도 260명의 애청자가 생겼습니다. 작년 말부터 저와 계약을 했던 플랜티 어학원에서는 새로운 사업체로의 진화를 꿈꾸고, 그 진화에 제가 보탬이 될 거란 판단 하에 저에게 개인 사이트도 만들어 주고(아래 링크 걸 거에요) 무료 강의도 열어주고 수익 분배도 파격적으로 저에게 해 줍니다. 아직 9월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만들어진 토대라 더욱 기쁩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결과물들은 위포트란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 만든 것이라 더욱 소중합니다. 사실 작년 초, 위포트에서 강사 면접을 봤던 적이 있거든요. 그 때 떨어진 것이 후회되지 않고 그들이 나를 떨군 것이 후회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 번에 걷게 되는 경의선 숲길은 화를 삭히기 위해서나 패배 의식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땐 그랬지.. 라고 하며 과거를 잔잔히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장으로써 그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러기엔 저의 독자님들, 팬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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