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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Aug 05. 2018

여유는 사소함을 놓치지 않는다

빠르게, 많이 글을 쓸 수 있는 비결(?)

사소함


한 개인의 행위가 더 웅대해질수록 그에 따라 사소함도 점점 더 흥미로운 소재가 된다.

알랭 드 보통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중



퇴사하고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자고 싶을 때까지 자서 좋겠다." 입니다. 여자 친구가 어느 날, 피부가 갈수록 좋아진다며 저를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던 적도 있었죠. 이 얘기는 비단 여자 친구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회사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잘 들어 보면 그들이 저를 부러워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큰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시간이 많아서 좋겠다 라던가 여행 가고 싶을 때, 자유롭게 가서 좋겠다 라던가. 그런데 이런 것들은 소위 말해 눈에 팍 띄는 것들입니다. 사실 그들이 절 부러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정말 '사소한' 것들 말이죠. 오늘 글의 주제는 사소함입니다.




유튜버 1세대 대도서관도 자신이 쓴 책, '유튜브의 신'에서 비슷한 말을 한 것을 얼핏 봤습니다. 크리에이터라면 일상의 찰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요. 하긴 이것은 굳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떠나서 뭔가 창의적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머리에 새기고 있어야 하는 메시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스치듯 지나가는 일상들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흥밋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흥미를 극대화시킨다면 모두가 넋 놓고 빠져들 만한 작품으로 승화되는 거죠. 나영석 PD가 만든 여러 리얼 버라이어티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작품들의 출발점은 분명 사소함, 우리의 보통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출처: 티빙 / 소지섭, 박신혜의 출연 여부를 떠나 일상 관찰의 끝판왕이라고 갠적으로 생각하는 프로 '숲속의 작은집'

다시 질문의 방향키를 돌려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를 부러워할 것들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일상에서의 사소함을 놓치지 않고 꼭 글로 기록 혹은 저장해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어야 사소함의 힘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억지 강박증에 사로잡혀 사소함을 관찰하겠다고 하면 도리어 아무 것도 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괜히 글 쓰겠다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가 한 자도 적지 못하고 컴퓨터를 덮을 지 모릅니다. 그것이 쉬이 되지 않는 이유를 저는 '여유'에서 찾습니다. 사진으로 보여 드린 프로 '숲 속의 작은 집' 역시 여유와 잔잔함만이 보입니다. 여유 혹은 쉼표가 창의성을 만든다는 얘기는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여유는 억지로 걸레 짜내듯이 짜낸다고 만들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회사 다니기 초반만 해도 회사원으로써 근무하며 가욋 시간을 활용해 나의 일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런 다짐은 한...3개월을 가지 못하 사그라졌습니다. 아침 8시반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면 녹초가 되기 일쑤입니다. 당시에는 주 52시간이 정착되기 전이라 회사 선배들이 저녁 먹고 가라고 하고, 저녁을 먹다 보면 술 한 잔 하고, 그 자리가 강압적인 건 아니었지만 선배들의 권유다 보니 딱히 거절하기도 어려웠죠. 게다가 어차피 혼자 타지에 나와 사니까 할 것도 없는데 밥/술이나 먹자고 하니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습니다. 술 많이 드시는 분은 아시죠? 술은 스스로를 나태함의 늪으로 빠뜨리는 마성의 도구입니다. 술에 찌들어 가고, 그렇다고 제가 숙취를 완벽히 해소하고 출근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출근 시간에 겨우겨우 맞춰 회사에 가고, 술을 즐기는 로테이션이 반복되면서 입사 전의 총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2년여 간 오산에서 그런 삶에 익숙해져 버린 저는 본사에 와서도 혼자 나태하고 게을러져 버렸습니다. 아시죠? 시간이란 게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거. 한 번 눈을 잠깐 감으면 바로 밤이 되고, 12시를 넘어간 시계를 보며 에잇 하면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자기계발 하면 다행이게요? 청소나 설거지도 그 때 그 때 하지 않고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회사 다니며 자기 계발도 하고, 글도 쓰는 몇몇 분을 아는데 말은 안 해도 정말 존경합니다. 그 분들은 기계에요(ㅠㅠ)


지금의 저는 어떻냐구요? 일단 제가 자고 싶은 만큼 잡니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켜고 카페에 가서 글을 씁니다. 자면서 순간적으로 생각했던 것들, 그 전 날에 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일들을 정리하며 글감을 농축합니다. 그 글감들 중에 제가 연재하는 브런치 매거진의 색깔에 맞는 것을 추린 뒤, 그 날의 글을 씁니다. 푹 자고 초롱초롱한 눈빛과 에너지로 글을 쓰니 글 한 자 한 자에는 생기가 넘칩니다. 그런 글에 쓰이는 소재 역시 누구보다 날카롭고 예리합니다. 여유가 만들어 낸 글의 힘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유가 있기에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사소함을 누구보다 잘 캐치해 귀여운 글로 매만지는 셈이죠.




사소함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이렇게 뜻이 나와 있습니다.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 보잘것없이의 뜻이 궁금해진 저는 한 번 더 사전을 펼쳐 들었습니다. '볼 만한 가치가 없을 정도로 하찮다'. 자 그렇다면 사소함이라는 뜻에는 그 대상을 관찰하는 자들의 부정적 가치 판단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죠? 누구라도 잘못한 자들이여, 나에게 돌을 던져라.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치를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특히 남의 삶이라면 더더욱 가치를 논해선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퇴사 후, 제 삶을 누구는 한량이다 백수다 라면서 뭐 하는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낸다 라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의 제 삶이 누구보다 만족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이렇게 매일 쌓아 가는 '사소한' 나의 자산들이 머지 않은 날에 폭발력 있는 대가로 저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도 변치 않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이렇게 뚜벅 뚜벅 글을 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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