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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Aug 06. 2018

여행의 목적, 일상의 연장

<스탠바이 웬디>와 lacie의 여행을 보며

여행의 기원과 궁극적인 목적은 여행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여행의 완성은 결과적으로 그것의 소멸인 셈이다. 이는 마치 나무를 태우는 불이 결국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것과 같으며, 직관이 떠오르고 나면 논증적 추론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과 같다.


장 그리니에 <일상적인 삶> 중



바야흐로 이번 주는 여름 휴가의 꽃이라 불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간 매일 사무실만 오가던 여러분의 삶에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 쉼의 기회라고 볼 수 있겠죠? 항상 접하던 마천루를 벗어나 탁 트인 바다나 산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마음은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공허하리라 봅니다. 아, 이 여유가 잠시 뿐이고 난 곧 일상으로 돌아가겠구나. 물론 제가 서두에 던졌지만 여행은 그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일탈을 했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항상 살아 오던 평상시로 복귀하는 것 역시 정해진 순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행의 기억으로 또 다가올 하반기를 꿋꿋이 버텨내는 거구요. 안 그래도 친한 후배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형, 나는 두어 달 여행을 가며 완벽히 충전하고
그 힘으로 또 남은 날을 살아가.


여행의 가장 이상적 모델은 그 여행이 나의 삶으로 승화되는 것이겠죠? 그러나 이런 바람은 거의 희망사항에 그칩니다. 그러나 여행이 내 일상의 연장선상이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여행을 끝내고 맞이하는 내 모습은 어떨까요? 분명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몇 단계나 성장하지 않았을까 확신합니다. 어제 저녁에 봤던 영화, <스탠바이 웬디>에서 웬디가 갑작스럽게 떠난 LA로의 여행 그리고 최근에 몇 달 간 배웠던 바차타 댄스를 추기 위해 저 멀리 바르셀로나로 떠난 제 친한 동생의 여행, 이 두 여행은 각자가 살아 왔던 일상에서 조금 더 외연을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여행은 누구나 떠나는 그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우선, <스탠바이 웬디>. 이 영화의 여주인공 웬디는 자폐증인지 감정 기복이 심한 건지 정확히 알 길은 없습니다. (굳이 블로그나 영화 소개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 정확한 병명을 안다고 해서 영화를 더욱 또렷하게 이해할 거 같지도 않았습니다. 추측건대 자폐증으로 사료됩니다. 여하튼) 자폐증 친구들이 갖고 있는 장점 중에 하나가 어느 하나에 몰입하면 그 쪽으로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스타트랙을 굉장히 좋아했고, 스타 트랙 시리즈 후속편에 대한 시나리오 공모전을 내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합니다. 무려 4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었고, 그녀의 집중력과 스타 트랙에 대한 몰입도를 고려해 보건대 수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우체국에 우편으로 시나리오를 보낼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것보다는 이 시나리오에 그녀가 얼마나 영혼을 갈아 넣었는지, 그 시나리오로 대변되는 스타트랙에 대한 애정도를 그녀가 있던 시설에서는 아무도 공감해 주지 못했던 거죠. 좌절하던 그녀는 아예 차라리 내가 인편으로 LA에 직접 가 시나리오를 전달하자고 결심합니다. 그녀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시나리오를 반드시 내겠다는 열망 하나로 언제나 걸어 가던 그 길 대신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일례로 원장님이 건너지 말라고 했던 마켓 가, LA에 가기 위해 건넙니다. 저는 그 장면이 대단히 상징적이라고 봤습니다. 금기에 도전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어떤 결말로 치달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죠. 전체 관람가라는 특성상 굉장히 훈훈하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여행을 통해 한 발 더 성장했습니다. 아니, 그녀는 이미 성장해 있었지만 그 성장을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었죠. 그런데 이번 여행 - 시나리오 작업한 것을 내기 위해 떠난 여행 - 에서 그녀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 줬고, 그제서야 주변 사람들은 불신의 눈을 거두고 그녀를 믿고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게 여행은 일상의 확장 그리고 증명이었죠?


여기 웬디와 똑같이 여행을 떠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몇 달 간 배워 왔던 바 차타를 라틴 댄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남부 유럽에서 추겠다며 홀연히 떠난 친구입니다. 물론 그 친구에겐 롱디로 만나고 있는 덴마크 남자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의 추억을 위함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 곳에서 선보인 열정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춤이란 동작 안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정열을 다했고, 그 정열 덕분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제가 열렬히 읽던 책, <그리스인 조르바> 속 조르바가 떠오릅니다. 속세의 짐이 너무도 무거울 때 그는 춤을 춥니다. 그 춤이 기괴하고 이상해 보일지라도 그로 인해 속세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털어 내고 자유로워집니다. 누군가 춤은 자유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그녀에겐 이 갑갑한 대한 민국에서 보이기 힘든 자유의 표현을 마음껏 한 거겠죠? 그녀가 이번에만 예외적으로 여행을 떠난 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이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언제나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춤을 주제로 떠났지만, 그 주제는 조금씩 다릅니다.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자신의 전공인 정치의 본질을 익히기 위해 떠나기도 하고 여행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여행은 그녀가 한국에서 조금씩 쌓아 왔던 일상의 범위를 넓힌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또 언제 떠날 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에 돌아오게 될 텐데 돌아오고 나서 그녀는 또 영화 속 웬디처럼 조금 더 성장해 있겠죠? 여행을 통한 그녀의 성장을 응원하며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합니다. 여행을 통해 잔뜩 올라와 있을 그녀의 행복 바이러스를 함께 나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인스타그램에서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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