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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Aug 07. 2018

먼 훗날, 오늘을 돌아봤을 때

나의 선택이 분명 맞는 선택이었기를

나는 아직 뭔가를 진정으로 슬퍼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다. 그래서 슬픔이나 미움이 어떤 추억으로 남는지도 잘 모른다. 막연하기 하지만, 그런 것과 마주하는 시기는 좀 더 훗날일 거라고 여겼다.


아오야마 나나에 <혼자 있기 좋은 날> 中


위 글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생각했을 때, 슬픔이나 미움과 같은 격렬한 감정을 느끼기엔 아직 어리다고 생각되는 주인공이 그 감정에 빠지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저 역시도 몇 년 전만 해도 당장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만 같던 상황이나 감정들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선택'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모두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보거든요.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발생되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도 저죠. 다만 그것에 대해 먼 훗날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저 역시도 퇴사를 이렇게 빠른 시기에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상대적으로 괄시받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렇다고 제가 회사 일에 애정을 듬뿍 갖고 있지도 않았죠. (전 팀장님, 저랑 면담하면서 애정 좀 가지라고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요.) 그러나 퇴사만큼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매월 정기적으로 떨어지는 월급은 매력적 유인이었거든요. 아시다시피 저는 입사와 동시에 제가 좋아하던 일인 자기 소개서 도와 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글 쓰는 일은 제 단조로운 회사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거든요. 그 일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내면서 좀 더 큰 꿈 - 해당 분야 전문가로의 발돋움 - 을 꾸게 됩니다. 원래는 회사 일과 이 일을 병행하다가 확실한 제 매출이 나오면 관두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학원과 계약을 해서 정기적 내 강의로 매출이 나온다던가 책을 써서 그것을 통한 인세가 나온다던가. 그러나 이후에 프리랜서로 살면서 느끼게 되었지만, 그런 장밋빛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찾아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희 학교 선배이면서 모 부서 대리였던 분은 처음에 대출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나와야지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곧 상여금 나올 때라 그 때까지만 다녀야지 라고 생각했고, 그런 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대리까지 왔다고 합니다. 모두의 삶이 으레 그러하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회사를 나오고 바깥 사람의 신분이 되어 회고해 보니 '뭐가 되면 나와야지.' 라고 생각하면 아마 여러분은 평생 회사를 나오지 못할 겁니다. 이직을 준비하더라도 이직이 된다는 확신도 없고요. 물론 능력 있고 자기 것 잘 챙기는 선배들 보면 회사에서 일도 어느 정도 하고 커리어도 쌓으면서 성공적으로 이직하는 경우를 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케이스는 굉장히 이례적이고 손에 꼽힙니다. 일부의 케이스를 보면서 그것을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대개 우리는 멀티가 힘듭니다. (그건 저도 그래요...)


회사를 관둔 것은 조금은 급작스런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신입사원이 우리 팀에 배치되어서 어떤 일을 맡겨야 할지 의논 중인 상황이었고, 회사 내에서 개인사로 아주 살짝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관둔 선배들의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으며 회사를 관두는 것 역시 만만치 않게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결정을 누구에게 말한들 조금만 신중하라고 할 게 뻔했습니다. 어른들이면 더더욱 만류하시죠. 그래서 저는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다행히 오랫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 제 입지를 옅게나마 쌓아 가고 있어서 회사를 관둔다고 해서 덜컥 겁이 난다거나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무모했죠! 절대 함부로 따라하면 안 돼요) 같은 팀 대리님께서는 제가 관둔다고 하니 한 말씀 하셨습니다. "역시 사람은 자기계발을 해야 해." 회사 외에 딴 주머니를 차고 있어야 한단 뜻이었겠죠? 여튼 이걸 믿고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결정을 합니다.


아직 그 선택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엔 이릅니다. 다행인 건 아직까지 후회는 없습니다. 회사를 관뒀기 때문에 잃은 것 못지않게 얻은 것도 많습니다. 우선, 단골 혼술집에 가서 일요일에도 술을 즐거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 여자 친구도 만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퇴사를 하며 이 일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평가를 들으며 계약했던 학원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플랜티어학원과 자기소개서/취업 강사 계약을 맺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곳도 인정할 겁니다) 변변하게 지원을 받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원장님께서 영어(토익 etc)이후 학원의 십년지대계를 책임질 신사업을 찾으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취업 컨설팅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판단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 때, 공교롭게 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제가 시야에 들어오셨고, 그 후 개인 사이트 구축, 무료 강의에 대한 시수 책정, 유료 매출 발생 시 수익률 파격 분배 등 다양한 당근책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제가 신인 강사에 현재 브랜드가 없는 병아리임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저의 자율을 인정해 주셨다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면접을 봤던 다른 곳에서는 투잡은 힘들 것 같다며 저와 일하는 것을 완곡하게 거절하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존중합니다.) 올 하반기가 제가 퇴사 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올인의 시작점입니다. 그 성적표가 어떠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는 설렙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 선택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릅니다. 이로 인한 무게감 때문에 선택을 주저한다면 우리의 삶은 예상 가능한 뻔함이 계속될 겁니다. 이런 삶에선 굳이 훗날이란 부사어를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며 지난 날을 거창하게 추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엔 과거에 내가 이랬다면... 이라는 식의 가정법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퇴사 후, 현재의 제 앞길이 어떨지 장담하긴 어렵지만, 훗날 지금을 돌아보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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