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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Aug 08. 2018

솜사탕이 가르쳐 준 진심

진심대로 사는 나의 '퇴사 후 삶'

사키는 솜사탕을 아빠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름 언저리를 살짝 뜯어 접시에 올려놓고 찬장에다 간직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보송보송했던 솜사탕은 납작하게 찌부러져 있었어요. 옅은 벚꽃 색깔이었던 구름은 끈적끈적하게 녹은 빨간색 설탕 덩어리가 되어 접시에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아빠가 일어나도 어제의 그 보송보송했던 솜사탕을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사키는 왠지 가슴이 꽉 옥죄이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마음 언저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감정입니다.


기타무라 가오루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中


사키가 아빠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솜사탕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솜사탕이 공기와 만나 원래 갖고 있던 모양이 사라지고 보기에 약간 흉물스런 덩어리만이 남았습니다. 이걸 보게 될 아빠는 사키에게 당연히 이런 걸 여기다 왜 올려뒀느냐고 혼내겠죠? 사키가 이중으로 슬퍼할 생각을 하니 제 가슴도 같이 아립니다. 솜사탕에서 시작한 오늘 글이지만,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도 모를 나만의 '진심'입니다.




친구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지금 네가 살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여러 선택들이 누적된 결과라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 진심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업에 굉장히 종사하고 싶어했어요. 다른 이들을 가르칠 때 묘한 희열을 느꼈고, 저에 무언가를 배운 친구들이 그 무언가의 지식만큼은 나에게 배우기 이전보다 한두 단계 정도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에도 기쁨을 느껴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짜로 원하는 것과 사회가 원하는 것은 엄연히 달랐기 때문에 제 진심을 바깥에 펼쳐 보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 제가 최근에 본 동시 하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쓴 건데 제 마음을 어찌 이리도 잘 아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 보시죠.


“나는 ○○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이 친구의 마음 한켠에는 간절히 미용사가 되겠다는 열망이 숨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미용사 라고 하면 콧방귀부터 끼죠. 다행인 건 사회에서 미용사보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것이 덜 천대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 보면 교육업에 있고 싶은 제 진심을 풀어 놓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방에 있는데 아버지가 부릅니다. (저는 독립하기 전에 "준아, 이리 와 봐." 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습니다. 일장 연설 겸 잔소리가 시작되거든요.) 그 당시 TV 프로그램 중에 아버지께서 최애하던 것은 '짝'이었습니다. 아침 드라마 짝 말고, 수요일 11시마다 하는 SBS 리얼 예능 프로였습니다. 일반인들이 나와서 각자의 반쪽을 찾는 프로그램이죠. 그 곳에 나온 사람 중에 고대 출신 인강 강사를 굳이 언급하며 혀를 끌끌 차며 말합니다.


고대까지 나와서 인강 강사밖에 못하니, 한심하지 않냐?


몇 년이 지난 뒤에 꺼내는 기억이다 보니 정확한 워딩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확실한 건 뉘앙스만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고려대라는 대학을 나온 것을 굉장한 우월 의식의 징표이자 사회 고위층으로 가는 프리 패스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강의 업체에서 강사로 일하는 것을 한심하게 쳐다봤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보니 제 어조 역시 부정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와 당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러하니 제가 아무리 자식이라 할지라도 교육업에 종사하고 싶은 진심을 꺼내 놓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수능을 4번이나 보면서 집안에 상당한 교육비 출혈을 안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당당히 말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최효석 대표님의 글을 통해 접한 저 아이의 동시가 더욱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내 가족에게 내 진심을 얘기하고 진심이 이끄는 대로 살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저 아이처럼 국제중/민사고를 가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 곧잘 상위권 성적을 찍었습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대학교에 갔습니다. 하지만 각박해지는 사회 구조 때문에 부모님 앞에 진심을 내어 놓지 못했습니다. 좋은 학점을 받고, 대기업에 가고, 너와 비슷한 여건의 여자와 만나 결혼하고, 대출받아 집 사고, 아이 낳아 잘 기르고... 물론 이 공식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 삶인데 제가 왜 이런 공식을 따라가야 합니까? 더욱이 제가 이 공식대로의 삶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상황도 아닌 마당에.




늦게라도 세상에 제 진심을 꺼내 놓고 진심대로 살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싶고, 저도 제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다른 이에게 건강한 영향을 주고 싶었습니다. 교육이란 큰 틀에서 보면 맞긴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글쓰기란 영역에서 제 일을 찾고 거기에 종사 중입니다. 친구들의 글, 특히 자기소개서 쓰기를 도와 주면서 그들이 좀 더 나은 기업에 취직하는 데 새털만큼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많은 글을 쓰다 보니 나름대로의 인사이트가 정립된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젠 저만의 창의적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로까지 번졌습니다. 또 제가 쓴 글이 그 누군가에게는 저 구석에 숨겨 두었던 진심을 꺼내게 만드는 동인이 되겠죠? 꼭 누군가에게 보여 주려고 하지 마세요. 사키처럼. 그 진심을 설명하려고 들다 보면 솜사탕이 덩어리가 되듯이 변질될 우려가 큽니다. 설사 덩어리가 안 되었다치더라도 그 솜사탕을 사키가 느끼듯 아름답게 느끼지 않을 공산도 커요. 진심대로 살며 우리의 삶을 은은하게 빛내는 사람이 됩시다.


동네에 솜사탕 파는 곳을 검색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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