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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Aug 09. 2018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우리에게 고개 들 1초 정도는 허락해 줍시다

지붕 저편으로 하늘과 구름이 보였다. 아침부터 하늘이 맑더니 구름이 끼었다. 새하얀 덩어리. 이제 5월이건만 한여름 같은 구름이었다.


시바사키 도모카 <봄의 정원> 中


구름이 잔뜩 끼었다고 하면 비가 오기 직전, 흐린 하늘을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때의 구름을, 우리는 먹구름이라고 부릅니다. 분명히 어린 시절 우리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내용의 동시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서 이상하게 구름 하면 비 오기 직전의 잔뜩 찌푸린 하늘만 상상하게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만일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그렇다면 그것은 필시 맑은 하늘이 워낙 드물어서 혹은 흔해서 둘 중 하나일 공산이 큽니다. 직장인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제가 이 얘기를 던지는 배경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우리가 사는 집에는 지붕이 없습니다. 지붕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 대신 흰 벽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광등 불빛이 우리의 하루를 깨워 줍니다. 그나마 요새에는 IoT 기술을 접목한 전등이 나와서 일출처럼 빛이 서서히 방 안을 채우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공적 빛은 우리의 마음까지 완벽하게 어루만져 주지는 못합니다. 왜 사람들이 자연광이 그립다고 하겠어요? 퇴사하고 난 뒤 제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창문을 통해 제 방에 들어오는 빛에 깰 때입니다.(이 얘기인즉슨 늦게 일어난다는 말이겠죠? 그렇다고 언제나 늦잠에 빠져 허우적대는 게으름뱅이는 아닙니다. 강의나 의뢰작업, 스케줄이 있으면 저도 일찍 일어나요...) 억지로 스위치를 눌러 켜는 불 말고.


출근길을 봅시다. 당신이 어떤 식으로 출근을 하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 쉽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회사에서 제공하는 셔틀 버스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새벽에 버스를 타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안대를 끼고 자기 바쁩니다. (버스에서 잠이 정말 잘 온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여러 가지 감정이 엉킵니다. (낭만 말구요) 졸려서 눈을 붙이지만, 선잠밖에 안 듭니다. 정거장을 지나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이 들면서도 눈을 감긴 감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의 선택은 택시입니다. 택시를 탔다는 것은 지각을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선택하는 교통 수단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낭만은 사치입니다. 그렇게 회사 근처까지 온다고 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잘 보지는 않습니다. 여름엔 아침부터 덥다며 짜증 부리고, 겨울엔 춥다며 주머니에 손넣기 바쁩니다.


저 같은 경우엔 같이 사는 룸메이트와 아침에 조금 일찍 깨면 어김없이 산책을 다녔습니다. 집에서 스타벅스까지 거리가 있어서 그 곳까지 걸으면 운동도 되고 기분도 상쾌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급하게 차를 몰고 가거나 택시를 급하게 잡아타는 사람을 한 명쯤은 봅니다. 그럴 때마다 출근하기 싫었던, 밍기적대다가 지각을 걱정하며 택시를 부르던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저에게 요즘의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룸메이트는 퇴사 전에 제 얼굴을 보는 것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질릴 정도로 만나는 게 어느 때 보면 신기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는 절 보니 형은 퇴사하길 잘했다고 합니다. 사실 각자의 인생에서 한 중요한 결정이 나에게 성공적이었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 답이 대충 나와 있습니다.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회사에 다닐 때, 점심 시간에도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기란 쉽지 않았던 거 같아요. 1시간 남짓 되는 점심 시간에 팀 사람들끼리 단합을 위해 밥 먹을 때는 말할 나위 없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부서 동기들과 밥 먹으면 회사에 대한 부정적 언사를 늘어놓기 바쁩니다. 그러다가 음식에 양념 뿌리듯 요새 뭐하고 사니? 라는 안부를 묻습니다. 거의 반복되는, 일상적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허무감을 안고 자리에 돌아오면 부족한 아침잠을 메우기 위해 잠들기 바쁩니다. 점심 시간에 하늘을 보며 여유를 즐긴다는 것 역시 저에게만큼은 사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점심(點心)이라 하여 마음에 점을 찍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회사원에게 점심은 하루 중에 오점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업무 스킬이 부족해 속도가 느렸던 저는 점심에 업무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것마저 손에 놓았죠. 회사를 나와서 맞이하는 점심 시간의 가장 좋은 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때, 밥을 먹으라고 강요하거나 규칙으로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12시에 배가 고프면 점심을 먹습니다. 배고프지 않으면 계속 글을 쓰다가 3-4시에 배고프면 점심 겸 저녁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말 배가 고플 때 먹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로 필요할 때, 내 속을 채워 주는 음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식당 문을 나서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하늘을 봅니다. 참 신기하죠?




초지일관 얘기하는 거지만 구름과 하늘을 보려면 당신의 마음에 여유가 넘쳐야 합니다. 이건 사실 퇴사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는 거긴 합니다. 지붕이 없더라도 커튼을 굳이 걷어 하늘을 쳐다보면 됩니다. 약간의 수고로움을 기꺼워하지 않으려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는데, 전 이 곳간에 돈만 그득히 채워져 있다고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넉넉한 인심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선 내가 돈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갖고 있어야 해요. 남에게도 이러한데 나 자신에게 하늘과 구름이란 선물을 주려면 여유란 더더욱 필요한 조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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