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감은 피할 수 없다, 다만 늦출 순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탈출이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두서너 시간을 보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영원히 해방감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자유를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며 인생을 사는 방법과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비록 영화의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더라도 현실 속으로의 도피다.
사이먼 가필드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中
오늘의 도입부로 쓰기는 했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누가 극장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는 경우가 아니면 말이죠. 이유요? 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는 무한한 해방감을 느끼겠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밝아지는 극장이 싫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현실 역시 나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2시간 안에 결론을 지어야 하는 만큼 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현실은 어떤가요? 애석하게도 내 출구가 2시간 안에 뚝딱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도입부에서 제가 얘기한 책에서는 현실 속으로 도피라고 하지만, 그 현실이 내 현실이 될 수 없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실망감을 굳이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당신을 속박하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해방된다고 해서 엄청나게 즐겁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책,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맨 마지막 섹션에서는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된 소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인의 꼬임과 강요에 넘어가 책을 다 읽어서 똑똑해지게 될 주인공의 뇌를 그에게 통째로 갖다 바칠 위기에 놓입니다. 결국, 문지기와 요정(주인공의 환상 속에서 보이지만, 문지기나 노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나타나 문지기와 나를 구해 줍니다.)과 함께 절대 빠져 나갈 수 없어 보이던 그 곳에서 탈출해 현실로 돌아옵니다. 위기에서 벗어난 후, 그는 안도합니다. 그런데 그 옆에 함께 있어야 할 문지기는 탈출과 동시에 내 옆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워합니다. 티내지는 않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로 인해 허무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마다 그 느낌은 다르겠지만, 해방감이란 것이 영원한 (+)요인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날아가는 민들레 깃털 같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제 손에 남은 것 없어지는...그런 느낌 같습니다.
제가 항상 말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선택을 합니다. 선택은 비교를 동반하죠. 예전에 수능 공부할 때에도 제가 좋아하던 국어의 이규환 선생님께서 국어 영역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선택지 간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가장 적절한 답을 찾는 거라고 했는데요. 인생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완벽한 정답이 어딨습니까? 저는 사람의 손도 둘 중에 더 나은 것을 취하라는 뜻에서 2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다니던 저에게는 회사를 계속 다니는 삶, 회사를 나와 퇴사자로서 지내야 하는 삶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두 가지를 다 갖고 가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것은 몰입의 관점에서 볼 때 적절치 않은 선택이었죠. 소위 말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그 녀석들 모두 제 품에서 떠나 버리는 가장 비극적 결말만은 맞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도 소위 말해 투잡을 했었죠. 그 투잡의 역사가 2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투잡으로 시작했던 자소서(글)쓰기가 무르익어 갔고, 회사 일은 점점 재미가 없어졌죠. 회사를 다니는 것의 장점은 역시 25일에 따박따박 주는 월급입니다. 그러나 그 월급을 포기하고 자유를 추구하면 제가 제 시간을 좀 더 능동적, 주도적으로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퇴사를 선택합니다. 퇴사로 인해 느끼는 해방감은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하루 하루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면서 해방감에서 오는 허무감을 줄이거나 그것이 찾아 오는 시기를 늦추려 합니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직장인에게 가장 즐거운 날이죠.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주말을 알차게 보내야 그 다음 주도 힘차게 보낸다고들 말합니다. 발상을 바꿔 보면 안 될까요? 그냥 1주일 내내 주말처럼 생동감 있게 보내는 거지. 쉬고 싶고, 내가 몸담던 직장이 싫어서 퇴사하는 것 말고 내 삶을 더욱 더 알차게 보내고, 해방감보다 한 차원 더 올라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한 퇴사는 분명 의미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는 내 삶이 비전만 있다면, 그리고 그 비전에 스스로가 확신을 갖고 있다면 얼른 사표를 던지세요. 그 당신의 비전을 제가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역으로 보면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저랑 똑같은 꿈을 꾸는 건 아니잖아요? 4달을 회사에 다니지 않고 살아 본 결과, 살 만합니다. 당신이 비전과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재능만 있다면 말이죠.
그 재능을 찾지 못하셨다면, 책을 읽거나 다른 이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해 보세요. 보는 시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당신 자신도 몰랐던 그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