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하길
사람의 마음 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같은 걸 한단 말인가?
무라카미 하루키, <위스키 성지여행> 中
도입부 속에서 하루키가 말하듯 우리에게는 '한참이 지나' 그 값어치를 느끼는 대상이 하나쯤은 존재한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설정한 위스키와 여행의 접점을 절묘하게 버무려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을 음미하게 만드는 위스키와 시간이 지나 귀중함을 느끼는 여행의 궁합은 실로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여행만 그러하랴? 네 주변의 것들이 당신에게 갖고 있는 소중함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다. "있을 때 잘해"라며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우리 할머니의 그 가사, 꼭 나이 든 분들에게만 의미 있는 가사인 거 같지는 않다. 나도 한참이 지나서 이제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 것들도 많다. 그 때, 좀 더 그것을 손에 쥐고 있을 때, 잘 어루만져 주고 사랑의 눈으로 지켜봐 줄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들이 단언컨대 있다.
노래가 그렇다. 스트리밍해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데, 좋은 가수와 좋은 노래의 가치를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에 내 룸메이트와 오전에 책을 읽다가 룸메의 감동어린 표정을 봤다. 내가 켜 놓은 윤종신 노래를 듣고 진심으로 흠뻑 빠졌던 것이다. 왜 형이 윤종신을 좋아하지 알겠다며 아련해했다. 안타깝게 그렇게 멋진 노래를 만들어 준 가수나 프로듀서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도 그렇다. 우리 삶을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소수의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의 소중함 역시 별이 되고 나서야 안다. 나의 무지함을 용서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자잘한 내 일상 속에서도 나는 '한참이 지나'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내 물건들이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지하철에 두고 온 적도 많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알 길이 없는 물건들도 부지기수이다. 뒤늦게 그 물건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병신'이라며 욕을 한 적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카드. 은행을 다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카드 발급을 위해 몇 번이고 은행을 뻔질나게 방문했을 것이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요즘에 앱카드란 게 나와서 폰 안에 카드 및 결제 기능을 이식시켜 놓는 녀석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앱카드가 익숙지 않다. 구세대인가 보다. 손바닥 크기에 딱 맞거나 그보다도 작은 카드를 어김없이 잃어버렸다. 안경이나 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폰!!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 Q8도 좋지만 그 전에 쓰던 폰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 것보다 성능이 좋은 것들이었으니까. LG에 다니는 사람은 LG 폰을 써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기에 그 당시 LG 스마트폰 중 제일 좋은 것들을 썼다. 다 없어졌다. 그런데 이 저가형 스마트폰은 몇 달째 내 품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것이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한참 지나' 찾은 것들도 있다. 에그가 그랬다. 무선 인터넷을 어디서든 쓸 수 있는 작은 장치. 회사 다닐 때, 상주하던 고객사가 인터넷이 시원찮게 터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샀던 친구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뒤져봐도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찾았어야 했지만 난 쉽게 단념하고 말았다. 언제나 그랬듯 또 어디선가 잃어버렸을 거라 짐작했다. (그것이 내 실수였다.) 중고 에그를 5만원이나 현금을 주고 샀다. 게다가 그건 충전 중엔 인터넷도 안 터진다. 아주 내 취향은 아니다. 답답해 뒤질 것만 같다. 그걸 쓰기 시작한 지 한 1주에서 2주 정도 지났을까? 청소를 하고 방 및 내 세간살이 정리를 하다가 가방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원래 에그를 발견했다. 에그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주인 새끼야, 왜 이제 나를 찾니? 한심한 것..
나라고 그러고 싶었겠냐? 여하튼 덕분에 난 에그 2개를 보유한 트렌드세터가 된다. 물론 에그 1개는 나에게 사치품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렇게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산 물건 못 찾고 또 사고 하는 못된 버릇이 퇴사와 함께 잦아들어졌다는 것이다. 어제도 집을 나서면서 가방에 있는 우산을 꺼내서 바깥에 내어 놓았다. 나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변화이다.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심호흡을 속으로 한 번 하고 가방에 있는 쓸모없는 짐을 내려놓고 갔다. 어제는 비 한 방울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산을 갖고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에너지 낭비였다. 이런 식으로 퇴사 후에는 좀 더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는 많아진 시간으로 생겼다. 확보된 추가 시간에 내 주변을 좀 더 돌아보고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바쁘게 일하러 나가면서도 자기 것을 꼼꼼히 잘 챙기는 사람들이 많다. 난 부럽다. 30년을 조금 넘게 살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단점을 인지하고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난 유감스럽게도 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살기보다 장점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고자 마음먹고 사는 것이 더 좋다. 삶의 취향의 차이 정도로 봐 줬으면 좋겠다.
한참이 지나도, 아니 오늘 당장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기왕이면 내 주변의 물건들이 잘 살아 있나 한 번 둘러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