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는 것이 young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최근 유튜브 트렌드에서 의미 있는 흐름을 발견해 그걸 먼저 서두로 꺼내 보고자 한다. 유튜브와 같은 SNS에 접근하기 어려운 중장년층을 겨냥한 두 가지 서비스 혹은 크리에이터가 나왔다. 첫 번째, '복돌이 각설이 TV'. 전국을 돌며 공연하는 이들은 수십 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두 번째, 나훈아 히트곡 모음. 이 채널은 유튜브에 접근이 어려운 주요 타깃을 위해 따로 어플까지 나왔다. 우리가 그간 생각했던 개념에 돌을 던진 격이다. 스마트폰, sns, 앱 등 IT기술은 젊은 사람들의 점유물이라고 스스로도 무의식 중에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신시장 개척이요, 타깃 확대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오늘 글에서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이 서비스를 만든 이들이 주요 소비층을 겨냥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중년을 중년답게 바라 봤기 때문에 기회를 만들어 냈다.
대한민국에 남성 톱스타들을 보면 몇십 년째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정재, 정우성, 이병헌 등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들이다. 그런데 잘 보면 이들이 데뷔 때 취했던 스탠스와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중년의 풍미를 잔뜩 풍긴다. 그런데 팬들은 세대를 아울러 모두 그들을 좋아한다. (물론, 그들이 그냥 잘 생겨서인 게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할리우드에서도 보면 조지 클루니가 대표적이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이르고 있지만, 그만이 풍기는 남성다움은 멋있다. 최근 예능 밥블레스유에서 숙녀미를 뽐내는 최화정 님, 나이가 58이지만 전혀 그 나이대의 향기가 안 난다. 그렇다고 억지로 영해 보이려고 하나? 그렇지도 않다. 제 나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우아하다는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얼마 전 예능 윤식당의 주인장, 윤여정 님 역시 마찬가지다. 미간에 잡히는 주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자신의 얼굴과 가장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는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나이가 들었지만, 그 모습이 추하거나 별로라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나는 평소에 잘 웃는다. 주변에서 내가 하도 웃어서 눈가에 주름이 잡히니 웃는 걸 자제한다면 피부의 탱탱함을 더욱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추천한다. 그 제안이 물론 나를 생각해서 해 주는 거라는 걸 안다. 고맙긴 하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주름 좀 생기면 어떠냐?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늙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속 버튼 씨가 아닌 이상 우리의 얼굴은 시간의 경과에 맞춰 변한다. 자연 속에서 보이는 생물들처럼 퇴화의 과정을 거친달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신체만 그런 거 같지 않다. 정신도 억지로 young해지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말해 꼰대 혹은 아재 같지 않아 보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역시 굉장히 어색하다. 스스로 young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 늙음이 몸에 배어 버리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책 중 하나가 젊은 친구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다. 반드시 기억하길 바란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진다'는 것을
다행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간 살아온 환경이 나를 young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우선 수능을 4번이나 보면서 1학년으로 들어간 나이가 23살이었다. 동기들이 2-3살씩은 족히 어렸기 때문에 그들과 어우러지기 위해 내 의견을 push하는 것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군대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보다 높은 계급의 선임들이 다 1-2살씩 어렸다. 그 때 내가 마음 먹었던 것은 그로 인해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그냥 모든 환경을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군 생활에 굴곡은 있었지만, 그것이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힌 적은 없었다.
회사에서 나오고 나서 내가 하게 된 일도 나의 young함을 회복시켜 줬다. 회사에 들어가면 나보다 나이가 있는 분들을 상사로 모시고 언제나 regular한 일로만 1주일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나의 정신은 급속도로 퇴화되어 갔다. 그 퇴화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 퇴사였다. 퇴사 후,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거기에 파마도 얹었다. 회사에서 머리에 딱히 제약을 걸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팀장이 보면 분명히 한 마디를 했을 것이다. 예전에 겨울에 가디건을 하나 입고 갔는데 그것이 눈에 거슬렸는지 입지 말라고 엄포를 내렸던 그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물론 내 성격상 그것이 스트레스를 몰고 오진 않았다. 그냥 의상과 일은 대체 뭔 관련이지 라고 궁금했을 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자기소개서 작성 그리고 BJ 일 모두 나보다 나이가 꽤 어린 20대 중후반 친구들과 대화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경험을 내가 매력적인 자기소개서로 재탄생시킨다. 게다가 그들에게 내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너희들의 경험은 모두 가치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에 제단을 내리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권위의 산물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나도 겪었지만)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왔다. 그 삶에 대안을 주지는 못할망정 어른이란 이유로 함부로 그 삶을 평가하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그 생각/신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친구들이 호응해 주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경청/소통할 생각이다. 어린 친구들이랑.
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것 역시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격이다. 앞으로는 유언장이나 정치인 자기소개서 등 다양한 글 작업을 통해 내가 만나는 세대의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 나 역시 언제까지 피터팬이 아니니까. 나이에 맞는 성숙함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