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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돈 앞에서의 눈치게임

퇴사 후, 정직은 남의 얘기

by 하리하리

유례없이 불가마 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캐리어 씨가 개발해 주신 에어컨이 떡하니 우리를 지켜 주고 있는 집이 있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집에서만 죽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저 같이 바깥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걸 글감으로 뽑아 내는 사람에게는 집을 벗어나서 바깥을 쏘다녀야 합니다. 따가운 햇살 아래에 거리를 다니면 '아 이러다 일사병으로 죽겠구나...'란 생각까지 들죠? 그 때, 저희를 구원해 주는 곳은 카페 아니면 지하철 안입니다. 오늘 글은 여자친구의 퇴근 시간에 그녀와 함께 타고 있던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을 쓰려고 합니다.




지하철에 딱 앉자마자 제 여자 친구 눈에 띈 게 하나 있었으니, 약간의 현금이었습니다. 약간이라고 표현했지만 얼핏 보더라도 5만원도 보이고 눈짐작으로만 봐도 꽤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 돈 옆에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습니다. 여자친구는 그 분을 톡톡 건드리며 말합니다.


돈 떨어뜨리셨어요.


약간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 분, 고개를 젓는 겁니다. 자기 돈 아니란 겁니다. 그 때부터 제 착하디 착한 여자 친구의 멘붕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인 잃은 돈이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고, 그 돈을 사이에 두고 여자친구와 그 남자 분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나에게 이 돈을 역장님께 갖다 줘야겠지? 라고 묻습니다. 저는 차라리 돈을 놔 두면 청소 아주머니께서 발견하시지 않겠나? 그 분에게도 작은 행복이 되어 주지 않겠냐?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청소 아주머니께서 의외의 꽁돈을 발견하고 흥얼거리며 일할 모습을 생각하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최초 발견자는 여자친구였지만, 후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니 그 돈은 다른 승객 분들의 시야에도 들어왔습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어르신도 혼잣말로 '돈 저거 떨어졌네.' 라고 했는데 옆에 손녀가 '저거 옆 사람 돈 아니래' 라고 말했습니다. 그 구도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그 돈을 겟하는 것은 웬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고서는 불가하지 않을까 생각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오래지 않아 바로 나타났습니다. 양재역의 문이 열리고 양심 선언을 해 주신 남성 분은 내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승객들이 앉았습니다. 중년의 아저씨. 방금 내린 승객 분의 자리에 착석하셨습니다. 돈과 눈이 마주칩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돈의 존재를 아는 우리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계셔서 그런지, 어차피 주인 없는 돈을 아무도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뭐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 분의 바지 주머니에 돈이 들어갔거든요. 그 돈을 두고 묘하게 눈치 싸움을 벌이던 저희를 포함한 많은 승객 분들 동시에 '아...' 라는 탄식이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그 상황은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상황만 떠올리면 정말 재미 있었습니다. 뭐랄까...? 인질 납치범과 경찰 사이에 대치하던 상황? 그 인질이 주인 잃은 돈이었겠죠? 이건 흡사 인질이 납치범을 때려 눕히고 건물을 유유히 나온 정도의 허무감이랄까?


여자친구와 지하철을 내리고 걷다가 그녀가 이렇게 한 마디 툭 던집니다. '허무해.' 자신의 선의(善意)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무너진 이 상황이 슬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의 선의 역시 직업 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가 말했습니다. 전에 일하던 곳이 은행이다 보니 남의 돈을 잘 쓰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은행원인 우리 엄마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선의마저도 주머니 사정이 얇아지면 흐려지지 않을까 했습니다. 만약에 여자친구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나는 달리 대처했을 겁니다. 여자친구가 물어보더라구요. 어떻게?


난 엉덩이에 깔고, 내릴 때까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농담이 깔려 있는 대답이었지만, 저라면 분명히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겐 그런 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을 테니까요. 그 돈을 잃어버린 분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퇴사 후, 매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매일 기회를 찾아다니며 살다 보니 강릉 강의도 하고, 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방송도 하며 간헐적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regular한 수익은 아닙니다. 이런 환경은 저를 언제나 기회를 찾아 다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때, 이렇게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은행 ATM 기기 앞에 있는 돈은 썼다간 쇠고랑 찬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했습니다. 그런데 은행이 아니라 지하철이라니!! 저에겐 천운이라 생각하며 돈을 쥐었을 거에요.




저에게 돈은 그런 의미입니다. 생존입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사라지는 잔액을 봐 보시면 착한 이정준보단 악마 이정준의 지분이 커지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악마는 진짜 악마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일부 분들이 올려 주신 댓글도 봤고, 이 글에 대해 다시 한번 숙독을 해 보았습니다. 내용을 수정하기보다는 첨언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요. 우선 소중한 의견 달아 주신 분들 감사드리구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좀 섣부르게 단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돈 한 푼 한 푼에 대한 아쉬움이 절절하다 보니 사람으로서 모름지기 지켜야 할 도덕성을 간과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돈과 도덕성은 따로 떼어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친구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솔직하게 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저 역시도 글을 쓸 때, 조금은 솔직하게 쓰려고 하다 보니 보시는 분들이 조금은 거북함을 느끼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대학교 때까지 윤리 교육을 충실히 받아 온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게 만듭니다. 앞으론 좀 더 글을 쓸 때 당연하다고 인정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피드백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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