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을 보며 느낀 사랑의 단상
벌써 보고 싶어요. 애디가 말했다. 우리는, 당신과 나는, 어찌 될까요?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中
이 제시어를 보고 정확히 떠오른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쌍화점>입니다. 원나라 사람이었지만 정략 결혼으로 인해 고려의 황후가 된 송지효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지만 조인성을 사랑하던 고려의 왕 주진모 마지막으로 삼각 관계의 중심축이었던 주진모의 호위 무사 조인성. 격동의 고려사에서 이들의 삼각 관계가 우리의 뇌리를 강렬히 두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했던 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영화를 본 충격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비열한 거리>를 만들었던 유하 감독답게 감정의 밑바닥까지 긁어 내어 인간이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 줬던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봐서 그런지 영화의 색감, 씬 하나하나에서 제 침을 바짝 삼키게 만드는 카메라 워킹 등은 제가 감당하기엔 좀 파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맨 처음 러브씬을 선보였던 두 배우는 주진모와 조인성입니다. 조인성을 사랑하는 주진모의 농밀한 들이댐 때문에 머리가 지끈했었죠. 그런데 주진모가 조인성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조금 지나 밝혀집니다. 불임이었습니다. 무정자증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이 증상을 딱 정확하게 영화에서 설명해 주진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시대잖아요. 무정자증이 뭔지 알기나 했겠어요? 그럼 주진모는 어떻게 자신이 불임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그것도 충분히 유추 가능합니다. 그 시대에 콘돔을 썼을 것도 아니고 왕의 씨앗을 받는다는 것은 그 때에만 해도 성스러운 것으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곳에 씨앗을 뿌렸을 거라 짐작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임신이 되지 않았던 여자들을 보면서 자신의 증상을 유추했을 겁니다. 물론 왕의 전담 의사도 있었으니까 진맥을 받았겠죠?
문제는, 당시 고려를 종국으로 인식하던 원나라의 압박이었습니다. 그 때 고려왕은 원나라의 입김에 따라 언제든지 갈아치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죠. 한 마디로 허수아비였습니다. 허수아비 왕이지만, 기본적으로 후손을 잉태해야 하는 과업을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 왕은 진정 존재의 이유가 사라집니다. 마음이 급해진 공민왕은 희대의 실수를 합니다. 원나라에서 온 황후였던 송지효와 조인성을 합방시킨 것입니다. 정략적 이유로 둘의 합방을 허했지만 굉장히 찜찜해 합니다. 러브씬 내내 건넛방에서 그 둘의 신음 소리를 엿듣는 주진모의 표정은 가히 압권입니다.
조인성과 송지효가 길일을 받아 두어 번 정도 러브씬을 하는데, 참 웃기는 건 송지효의 태도 변화입니다. 목석처럼 가만히 있으며 조인성을 품은 그녀. 마지막 날에는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요동치는 감정을 본인도 어찌할 수 없었는지 스스로 그 자리를 리드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한 번 더 만납니다. 송지효가 먼저 밀회를 제안했고 조인성도 응합니다. 아마 두어 번의 합방을 통해 그들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랐나 봅니다. 그렇게 고려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특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던 부분은 조인성이 주진모에게 말을 선물받은 뒤, 황궁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황후의 별장으로 하룻 밤 새에 갔다 오는 장면입니다. 단 1박을 위해 그의 질주는 맹렬한 야수 같았습니다. 그러나 둘의 러브씬 이후 두 사람의 눈빛은 너무도 처연했습니다. 아니, 러브씬 하는 와중에도 보여지는 그들의 눈빛은 슬펐습니다. 주진모는 조인성의 외도를 알아 버렸습니다. 의심만 하고 있던 그가 확증을 잡은 셈이죠. 그는 한 번 더 용서해 줍니다. 용서는 더 큰 비극을 눈덩이처럼 몰고 왔죠. 비극이란 힌트만 드리고, 결말에 대한 내용은 함구하겠습니다. 꼭 보세요.
다시 맨 처음 제가 드렸던 도입부로 돌아가 봅시다. 이 둘의 사랑은 의도치 않았지만 불꽃처럼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하룻밤 밀회를 하고 그 다음 날 아무 일 없던 듯이 궁궐에서 인사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보고 있지만 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을 거에요. 그런 그들에게 '벌써' 보고 싶다는 메시지 안에는 벌써 지난 밤처럼 원없이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시간을 또 갖고 싶단 뜻일 겁니다. 사서를 보면 이렇게 슬픈 연인들이 많겠죠? 신분의 차이, 상황의 차이로 인해 마음은 있지만 엇갈리는 두 사람. 이에 비하면 요즘은 정말 행복한 겁니다. 이 정도 차이가 아니면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거 아닌 거 같습니다. 필시 둘 중 하나는 상대를 당신만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이 글 마지막이 이래서 죄송하지만, 사랑에 대해 자기 멋대로 정의 내리고 상대도 같은 정의를 가지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유주의 시대에 사랑이란 것에 대해 누구도 제약한 적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