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결정한 것은 '어울림'
당신이 헌신하고자 하는 명분, 이를테면 말라리아를 박멸하기 위한 편리한 금융업이라는 생각으로 그 일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뇌는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기관이다. 어떤 활동을 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할 때마다 당신은 조금씩 개조된다. 타인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당신은 그들을 닮아간다.
애덤 그랜트 <냉정한 이타주의자> 中
이 도입부를 그대로 내 상황에 접목해 보겠다. 나는 입사하면서 우선 명분이 없었다. 원래 명분이 가득한 사회적 기업을 세워 일하려고 했다. 명분은 찾았으나 실리는 얻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말한다. 내 책에 몇십 엔을 들여 구매하는 독자들이 더 중요하다고. 아무리 권위가 중요하다며 문학상이다 뭐다 하면서 언론에서 치켜세워봤자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역전의 신'이란 회사를 세우며 명분은 잡았지만, 실리를 잡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권유에 급격히 흔들렸다. 그렇게 나는 애지중지 하던 회사를 접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회사는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참고로 회사에 가서 1년여 정도를 일하던 어느 날, 중앙일보에서 전화 온 적이 있다. 사회를 바꾼 '소셜 임팩트' 중 하나로 나와 역전의 신을 다루고 싶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이제 안 하는데요.
애석하게도 실리는 명분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니 일이 재미있을 턱이 없었다. 집에서는, 어른들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것은 나의 명분이 되지 못했다. 내 삶이 부모님의 삶은 아니니까. 명분 없는 삶은 내 일의 이유를 찾아 주지 못했다. 그러니 더욱 더 외부의 영향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역전의 신을 바로 문 닫은 게 아니었다. 내 후배에게 소위 말해 회사를 물려 주었다. 물려 주었다고 말하지만, 도피다. 돈 안 된다고. 그 후배, 지금은 이 경험을 발판삼아 이투스/메가스터디에서 대입 강의 중이다. 꽤 많은 돈도 벌고, 자소서 책도 내면서 대치동에서 잘 나간다. 그의 성공이 부러운 게 아니다. 그 친구는 가능성을 보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초지일관 밀어 붙였다. 그게 부러운 거다. 명분 없이 모니터 앞에서 판매가 입력만 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 더욱 술먹고, 회사 가기 싫어했나 보다.
그런 나의 답답함을 해소시켜 준 게 자기소개서 작성 가이드 일이었다. 내가 회사를 들어간 과정을 카페에 올리니 나에게 배우고 싶어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시발점으로 산업군, 전공을 막론하고 많은 취준생들의 자소서 작성을 도와 주었다. 소위 말해 살아 있음을 느꼈다.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 게 좋았다. 대학 때, 경영과 국문에 치우쳐 있던 문과적 지식이 이공계를 넘어 석/박사까지 경험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오히려 내가 똑똑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느낌을 받는 것도 좋았다. 자기소개서란 게 말이 쉬워서 그렇지 결국 글이다. 자기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풀어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런 이들에게 글을 빨리, 논리적으로 써 내는 제 역량은 꼭 필요하다. 물론 회사에서도 내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나는 회사에서 대체 가능한 존재이다. 내가 맡는 일을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이 재능은 모든 취준생들에게 요긴하게 쓰인다. 그리고 이 업(業)에 종사하시는 분 중에 실질적으로 글을 뽑아내 주는 분을 뵙지 못했다. 대체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 준다.
이들과 어울리면서 상반된 자아끼리의 충돌로 인한 고통은 더욱 커졌다. 두 자아 모두 의미 있는 것이라면 좋았겠지만 둘 중에 자기소개서를 써 주거나 도와 주는 일에 대한 애정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후자를 택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취준생들과 어울리면서 나 역시도 그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받는다. 아직 백지인 이들에게는 일하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있다. 그들을 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낀다.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다.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곧 내 일의 의미를 선명하게 새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함께 성장하고, 함께 행복해한다. 요새 아프리카TV 애청자들과 오픈카톡방, 카페를 개설하며 그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변화는 더욱 거세지고 있고, 변화를 결심한 내가 참으로 잘 했단 생각을 한다.
이 일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엄청 나이가 많은 분들과 어울리는 '유언장' 등의 글을 써 보고 싶기도 하고, 구의원이나 시의원에 출마하는 군소정당 후보들을 위한 자기소개서 쓰는 일도 해 보고 싶습니다. 글을 쓸 줄 아는 제 재능을 다양한 부분에 활용하다 보면 좀 더 많은 이들과 어울리겠죠? 인생은 한 번뿐인 만큼 전세계 모든 이들과 어울리며 저에게 좀 더 맞는 옷을 입고 성장하겠습니다. 지금도 저는 5년 후, 10년 후 미래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 색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