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하지만 꾸준히 나의 일을 하자
담고 옮기고 꺼내는 것 중에 그릇과 사진, 가방이 있다. 이따금 그것들은 불연속선의 끝에 자리 잡아 화살표처럼 방향을 가리켜 보인다. 그때에 우리는 그것들이 가리키는 쪽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릴 것이다.
은희경 <불연속선> 中
나는 '의식의 흐름'이란 말을 좋아한다. 의식의 흐름은 곧 불확실성이란 말과 이어진다. 내가 선택한 지금의 삶은 불확실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내 또래 친구들과 나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차이가 확실성 여부를 결정짓는 것일까? 그건 바로 내가 서 있는 공간이 어디인가에 달려 있다. 직장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란 공간에 매여 있다. 매여 있다는 표현이 부정적 뉘앙스로 비춰질 지 모르지만, 그들은 한 곳에 있다. 게다가 앉아서 업무를 한다. 내가 하고 싶을 때 일하고, 하기 싫을 때 잠시 쉬고 싶지만 회사란 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내 위에 있는 상관들이 지나다니며 나를 지켜 보기 때문이다. 아닌 척 해도 다 본다. 그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나의 자유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회사원이던 나 역시도 그랬다. 모니터와 멀리 떨어져 있는 휴식 시간 역시 담배 피러 가는 선배들을 쫓아갈 때 가능했다. 내 주관은 없었다. 여기서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했듯 한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하기만 하면 되고, 휴식도 휩쓸리듯 주어진 시간 내에 쉬면 그만이니까. 직장에서의 생활은 '확실함' 그 자체였다.
확실성이 행복을 보장하냐고 되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불확실성을 즐겼다. 면접에서 나에게 면접관이 질문하던 게 떠올랐다. "정준씨는 학점이 좀 낮네요?" "네, 우선 학점이 낮다는 것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지 않은 거 같아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구라다) 그러나 학교란 울타리를 뛰어넘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의미 있는 4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대답에서도 느껴지겠지만 나는 쏘다니는 걸 참 좋아했다. 어머니에게 용돈 받던 시절에 어머니는 내가 매달 교통 카드 비용이 엄청 빠져 나간다고 그만 좀 나다니라고 잔소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에는 변변하게 맞대응을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난 생각했다. '어머니, 내 창의성은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제 경험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대꾸하지 못했다. 돈 없는 난 약자였으니까) 나에게 불확실성은 나를 성장시킨 자양분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나이가 들며 줄어든다는 것이 슬펐다. 내 의지가 아니고 환경에 의해 점차 사라지는 불확실성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나갔다. 세상에 나가서 다시 불확실성과 맞서고 싶었다.
매일 매일 내가 마주하는 불확실한 경험들이 좋다. 그 경험들이 하나 둘씩 쌓이다 보면 그것들이 케미스트리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 케미스트리가 그 다음 날 나의 새로운 삶에 또 다른 방향타를 제공한다. 확실성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든 인생이 확률 게임이다. 확률에 근거해 판단한다. 자신들이 정해놓지 않은 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절대로 도전하지 않는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친구들 다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과 사실 사이에 이어지는 '의미'라는 끈을 간과한다. 그러다 보니 삶에 생동감이 없다.내가 보기엔 그렇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창업가들도 차고 구석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라를 세운 이들 중에는 가난한 집안 출신도 있었다. 그들을 둘러싼 삶은 불확실성 투성이였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확실함을 담보할 만한 선택지도 없었다. 불확실함인 줄 알면서도 무심하게 길을 걸었다. 시대의 변화가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했고,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난 이들이 과거와 현재를 주름잡는 사람이 된 것이다. 만약 그들이 확실한 길만 걸으려 했다면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가 되어 높은 연봉을 받거나 농부가 되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에 만족했을 거다.
나는 높은 성공을 꿈꾼다. 내가 가진 것은 애석하게도 없다. 아, 하나 있다. 글 빨리 쓰는 재능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이 두 가지 믿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매일 매일 '무심히' 할 일을 하며 버텨 낼 뿐이다. 걷다 보면 어디엔가 운명이 나를 데려 갈 거다. 운명이 좀 더 멋진 나를 데려 가기 위해 할 일을 하며 나를 단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