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덩어리의 내 삶에서도 의미를 찾아야지
그가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옥상이었다. 옥상은 벤치가 놓인 휴게실이 아니라, 탁 트여 있을 뿐인 그저 넓기만 한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곳에 나가는 사원은 없었다. 그는 때때로, 점심시간에 그곳으로 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후지와라 신야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中
나는 회사에 있으면서 세 번의 부서 이동과 네 번의 사무실 이동이 있었다. 두 번은 경기도 평택이었고, 마지막 한 번은 본사였다. 첫 번째 공간은 다른 회사의 물류센터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옥상은 없었다. 다만 우리 사무실 위층이 큰 창고였다. 워낙 커서 한 바퀴 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우리만의 화장실은 더욱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창고로 올라가 구석을 한참 걸어가야 화장실이 있었다. 이 곳이 좋았던 건 그래도 나 혼자 사색할 공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은 아니라서 꼭 몇몇 선배들이 나를 함께 데려 갔다. 여기 말고 한 군데 더 있었다. 그 곳은 1층으로 내려가 몇 걸음 걸으면 보이는 흡연장이었다. 이 곳은 더욱 내 공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담배를 핀 적도 없었고, 그 곳에는 다른 회사의 직원들도 담배를 피러 왔다. 그 곳은 정말 마초의 공간이었는데, 난 마초가 싫었다. 추가적으로 외근을 갔다가 돌아오시는 팀장님이나 팀 선배들을 만나기 일쑤다. 내가 도입부에 쓴 책 제목처럼 이 곳에서는 '돌아보면 언제나 선배들이 있었다.'
나름대로 대기업의 계열사인데 변변한 자기 공간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입사한 지 1년여쯤 지나서였을까? 우리만의 사무 공간이 생겼다. 간판에 우리 회사 이름이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좋아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곳은 더욱 나만의 공간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였다. 우선 흡연 공간과 산책 공간이 모두 옥상으로 통합되었다. 널찍한 옥상이라고는 하지만 이전 사무실에서의 창고보다는 훨씬 좁았다. 한 바퀴 돌 것도 없이 그 곳에서 우리 팀에서부터 다른 팀 사람들을 거의 다 만날 수 있었다. 퇴근하기 전에 그 옥상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옆에 같이 나온 나도 그 회식에 어김없이 불려 갔다. 회식까지 마치고 법인카드로 택시 타고 집에 와 지친 몸을 이끌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집에 몸을 눕히는 시간은 2시가 다 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잠자기 바빴고, 아침에 나는 다시 나만의 공간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그 곳으로 향했다.
본사로 팀이 바뀌었다. 내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겪는 것이 집과 떨어져 사는 것 때문이라는 판단이 있었다.(본가로 돌아간 지 1주일도 안 돼 아버지와 싸운 걸 보면 이게 해결책은 아니었던 듯 싶다.) 본사도 광화문에서 마곡으로 이동했던 적이 있다. 광화문에서는 지하 1층에 여러 계열사들이 함께 담배 피는 곳과 지하 식당이 있었다. 본사라 그랬나? 담배 같이 피자 하는 선배가 많지 않았다. 지하 식당도 평택에 비해서는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본사와 평택의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와 같은 분위기였다. 대놓고 하는 지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리를 자주 비우면 느껴지는 눈치 같은 게 있었다. 본사는 게다가 임원 분들도 많으니 그럴 수밖에. 몰래 지하를 가더라도 식당에 가면 꼭 다른 선배들을 만났다. 그래도 여기선 막 아는 체는 안 한다. 다 자기네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밀담을 한다. 혹자는 이게 더 외롭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 체질엔 이게 더 맞았다. 마곡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짧았다면 짧은 회사 생활을 거치며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직 구성원들과 한데 어우러져 지내는 것 역시 업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며 내 공간, 내 개성, 내 색깔은 어느새 잊혀졌다. 잠시간 나를 찾기 위해 도피한 공간에서조차 다른 이들과 대화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피곤했다. 그래도 본사가 아닌 곳에서는 헛점도 있고 약간의 느슨함 덕분에 개인 공간을 찾아 도피해도 괜찮았다. 선배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일개 월급을 받는 사원이니까 약간 눈감아준달까 하는 것이 있었다. 본사에는 왠지 모를 차가움이 있었다. 내 공간을 찾아도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이 있었다. 결국 회사에서 있던 2년 반 동안 어디에도 내 공간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것을 찾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내 공간을 찾아 회사를 나온 셈이다. 확실히 내 (심적)공간이 생겼고, 그 곳에서 나를 다듬어 세상에 내 생각을 내놓고 있다.
송민호가 겁이란 노래에서 이런 가사를 썼다. 'CCTV 속에 사는 게' 내 목표는 분명하다. 글로 유명해지는 거다. 현재 내가 글을 연재하고 브런치, 내 개인 플랫폼이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곳이다. 이 곳에 글을 써면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글이 간혹 카카오톡 채널에 올라가면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의 서슬퍼런 댓글이 적힌다. 내 생각을 펼친 거라며 떳떳하게 대응하곤 하지만 그 비판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움츠러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나름대로 타협점을 찾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생각을 고치는 거다. 내 공간에 내 생각을 재료로 글을 쓴다. 그 글을 보면 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글로서 유명해지는 삶을 지향하다 보니 이를 많은 이들(소셜)에 공유한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내 공간을 줄여 가며 나를 찾고 있는 여정.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되나 보다. 날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이들을 믿고 일단은 걸어가야 한다. 어차피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각자 공간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글 한 편 썼으니 담배 대신 커피를 한 잔 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