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발견을 기뻐하라
길에서 그녀의 발걸음을 따르는 게 쉽진 않았지만, 나는 그녀 뒤에서 계속 자전거를 끌고 갔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내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렸으니까. 서기를 시인으로, 피아노 조율사를 작곡가로 만들 수 있는 접촉이었다. 모든 이유를 빈말로 바꾸어버리는 접촉.
아스트리트 로젠펠트 <아담의 사라진 여인> 中
내가 글을 잘, 빨리 쓰는 능력은 원래 내 안에 있었을 것이다. 그 능력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나에게도 분명 있었다. 도입부 속에서 그녀를 만나 모든 순간이 특별해진 나처럼. 오늘은 그 순간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 보고자 한다. 트렌드 인사이트 에디터로서 다음 주에 첫 기획안을 내야 하는데, 그 주제를 '재능 발견'으로 잡고 있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중이다. 일단 내가 나의 재능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해 먼저 기틀을 잡고 가야 다른 나라의 마이크로 트렌드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럼 오늘의 주제, '발견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나 역시도 취업준비를 하며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여러 사교육을 이용했다. 주요 대기업 인사팀 출신의 선생님들 강의를 들으며 취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많은 친구들도 공감하겠지만 듣다 보니 그 소리가 그 소리인 거다. 비싼 돈을 내면서도 막연함을 지울 수 없던 게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러나 다행히 대기업에 들어갔다. 특히 그 그룹의 계열사 3개는 모두 면접까지 겪으며 내가 다니던 LG그룹과 나란 사람이 조금은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섣부른 기대감'을 품었다. (내가 LG를 떠나 그냥 회사랑 안 맞는다는 걸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하튼 나는 회사에 최종 합격한 후기를 (선생님들의 카페가 아니라) 스펙업 카페에 올렸다. 내가 들었던 강사들 중에 그나마 도움을 받았다고 느낀 모 선생님 카페에는 후기를 올렸다. 여전히 그 후기는 카페에 살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지금만큼 글을 잘 쓰고, 글쓰는 걸 좋아했다면 좀 더 상세한 후기를 올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카페에 올렸던 후기를 보고 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자신도 LG 계열사(특히 생활건강) 영업 일을 하고 싶다며 나와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화생공 전공자라 영업 지원을 하기에는 경력이 그리 많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나와 과외를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나의 취업/자소서 가이드 역사는 시작되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이 친구가 녹십자 계열사에 합격하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 성과로 이어지자 좀 더 이 일에 관심이 생겼다. 이것이 '자기소개서'란 나의 재능을 발견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다른 전공 친구들과도 연이 닿아 한 명 두 명 아이들의 자기 소개서를 봐 줬다. 전공을 막론하고 다양한 글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 실력이 늘었다.
다만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 제가 써 준 글이 마음에 안 든다며 환불을 요구한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최근에 아프리카tv 방송을 시작하면서 친구들에게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게 생겨서 이전에 비해 조금 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생긴 것 같다. 예전에는 카페에서 자기소개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와 댓글로 소통을 시작해 카카오톡, 전화로 이어 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리카tv 방송국에 직접 찾아와 연락하거나 내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직접 게시글을 올리기도 한다. 발견의 기쁨이 지속되려면 그 기쁨이 나만의 기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다 나와 같은 순간을 겪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각각 니즈가 다르다. 그 니즈를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는 나를 끊임없이 변신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변신의 흔적을 품에 안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나의 옷을 갈아입을 줄 알아야 한다.
좀 더 먼 미래에는 이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 내가 자기소개서, 글이란 수단으로 내 삶의 기쁨을 맛보았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궁극의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그것이 글이 아니라 ppt일 수도 있고, 영어일 수도 있고 뭐든 상관없다. 지금은 내가 글을 써 주면서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기쁨은 내 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다. 자신만의 재능으로 독립된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원하는 것이다. 내가 얼른 글이란 무기로 우뚝 선 뒤, 재능을 찾아 주는 학교를 만든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삶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이 글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찰나의 순간을 함께 맛보며 또 다른 기쁨을 누린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