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와 과정의 비율을 맞춰 가는 이상적 교육을 향해
피아노를 때려 부술 듯이 마구잡이로 두들기고 싶다. 서랍장 안에 든 옷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싶다. 반지든 목걸이든 빌딩 꼭대기에서 마구 내던져 버리고 싶다. 담배를 한꺼번에 열 개비쯤 피우고 싶다. 그렇게 하면 다 떨쳐 낼 수 있을까.
아오야마 나나에 <혼자 있기 놓은 날>中
오늘은 나의 절친한 룸메이트가 캐나다로 5개월간 교환학생을 떠난 날이다. 소소하게 얘기도 하고 밤을 지새울 계획이었지만, 전날 간만에 벌어진 나의 과음 라이프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그 친구는 밤을 새서 짐을 싸고, 신변 정리를 한 뒤 새벽 5시에 떠났다. 물론 나에게 약간의 부탁도 하고. 소포는 내일 부쳐 줄 예정이다. 나는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깼다. 이미 그는 떠나고 없었다. 헛헛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내 아픈 속을 달래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더 끙끙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또 퇴사자의 묘미 아닌가? 샤워를 마치고 쌀국수를 먹으며 속을 달랜 뒤, 카페에 왔다. 오늘 글의 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원래 내가 오늘 쓰려던 글의 주제는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들어온다'였다. 방금 몇 분 전 들은 대화로 나의 글 주제는 뒤바뀌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들의 대화가 너무 찰져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한창 진행 중이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자꾸 남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글쟁이가 나를 포함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글감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렇게 제발로 나에게 글을 쓸 소스를 주시는 어머니들에게 (마음 속으로) 절 한 번 하고 계속되는 그 대화를 듣게 되었다. 그 대화의 핵심은 결국 '자식 자랑'이었다. 한 자식이 전자 공학과에 다니며 전액 장학금을 받고, 그걸로 용돈 하고, 자신은 삼성전자에 취직하겠다고 선언하는 한 어머니의 입담이 배틀의 포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아마 이 친구가 둘짼가 보더라. 큰 아들은 졸업 유예를 했고, 여자 친구랑 데이트 하고, 늦게까지 게임하는데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고 한다. (그래도 요새 자식 배틀은 자신의 치부도 함께 드러내 인간미를 보여 주는 듯 하다) 한 분의 꽤 오랜 리드 후에 다른 분이 조심스레 받아쳐 주신다. 자신의 딸이 남자 직원을 뽑기 위해 공고를 낸 곳에 붙었다며, 딸의 생일날 합격했다며 뿌듯해 하신다. 애석하게도 뒤에 몇 마디의 대화가 더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도돌이표일 것만 같아 그 분들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컴퓨터를 켰다.
잠시 생각해 봤다. 그 분들에게 내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물론 상상이다. 그 분들은 관심도 없을 거다. 다만 일반적 시선에서 상상해 보자면...?) 취직도 못한 놈이 평일 오전에 카페에 앉아서 컴퓨터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한심할까? 그 분들에게 자식의 성공 기준은 무엇일까? 좋은 직장에 간다고 성공의 보증수표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일까? 나처럼 대학 때, 공부도 게을리 하고 3점이 겨우 넘는 학점으로 간신히 졸업장을 받아들고 그나마 받아 주는 대기업이 있어서 감지덕지하고 회사를 다녔어야 했는데.. 3년도 채우지 못해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온 모습은 그 분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물론 '그렇게 하면' 난 행복할지 모르지만 부모님의 속은 문드러질 거다. 지금 내 부모님이 그럴 거다.
여기서 한 마디 들은 게 사실 더 압권이었다. 자기 아들 지인이 해병대 나왔는데 거기서 만난 선후임들과 게임을 만들어 게임회사에 팔고 주주가 되었단 이야기까지 하신다. 이 분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니 그 분들이 모두 결과에만 모든 관심을 쏟고 있음이 느껴졌다. 게임을 만드는 동안 분명 눈물 젖은 빵을 먹었을 텐데 그것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다. 아시면서 모른 척 하는 걸까 그 이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일까? 조심스레 후자의 손을 들어 본다. 이건 그 동안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연관이 깊다. 반 세기만에 빠른 규모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는 과정에 일일이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빠른 성장을 일구기 위해 희생해 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지 않는다. 그들이 만들어 낸 과정이 빛나지는 않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다. 게임으로 성공한 이들에게도 고생한 과정이라는 역사가 존재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앞에 자식이 전액 장학금을 탄 거, 고생하며 취업을 한 거 등 그 과정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과정도 함께 치켜세워 주는 거다. 슬펐다. 그런데 하나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지금의 과정이 별로라고 해서 결과까지 별로란 법은 없다. 얼마 전 다이아 페스티벌에서 보겸이 300만 구독자 가즈아~! 를 외칠 때, 모두가 환호하는 모습을 봤다. 철구가 아프리카TV 내에서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지만 구독자 숫자가 압도적이라 아무도 건들지 못한다. 그들의 영향력이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그 결과만 봅시다. 지금과 같은 결과(부와 브랜드)를 만든 것에만 찬사를 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들도 그걸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방송하고 유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이제서야 그 결과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그런 걸 모르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동네 단골 식당에서 들은 얘기입니다. 인기 유튜버 고몽님도 원래 공무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튜브 구독자가 급증하다 보니 때려치우고 이 일에만 올인한다고 합니다. 정육점을 하시는 부모님께 차를 한 대 뽑아 드리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결과로 보여 줘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과정보다는 결과에 무게추가 급격히 쏠려 있는 나라입니다. 결과를 낸 뒤, 제 과정도 함께 보여 드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결과와 과정 모두를 균형감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풍토부터 만들어져야 교육이 바뀌고, 바뀐 교육이 우리나라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각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은 이미 충분합니다. 그것을 발현시켜줄 수 있는 교육이 어서 혁신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