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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Aug 17. 2018

비온 뒤 그리고 내 앞의 커피

그리고 이렇게 너에게 쓰는 글

비오는 날은 여전히 썩 좋아하지 않지만, 젖어가는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즐길 수 있는 감성을 런던은 내게 알려주었다.


김현정 <그럴 때도 있다> 中


오늘같이 하늘이 유달리 맑고,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시원해진 날이면 청개구리처럼 비 오는 날을 떠올린다. 좋을 때, 나빴던 걸 생각하고 나쁠 때, 좋았던 걸 생각하는 걸 보면 난 참 짓궂다. 비가 오든 하늘이 쾌청하든 내가 잠에서 깨어 씻고 나오면 꼭 찾는 곳이 있다. 카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대는 역시 10시에서 11시이다. 점심 시간에 우루루 회사원들이 바깥으로 나와 식당에 오기 직전, 그리고 회사원들이 이미 출근을 어느 정도 끝마치고 난 뒤의 고요함이 난 참 좋다. 퇴사를 하고 난 뒤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이고, 이 시간대가 나의 영감을 두세 배 이상은 끌어올려 준다.


같이 사는 친구(곧 캐나다로 교환학생을 떠난다. 물론 다시 돌아오지만, 그의 무사기환을 바란다. 3천만원의 보증금 중 일부가 그의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와 오랜만에 함께 집밖을 나섰다. 다음 주면 떠나는 만큼 한국에서 볼 사람들도 매우 많아 보인다. 신변 정리도 하고, 바쁜 스케줄을 소화 중이다. 그래서 얼굴을 보기 더더욱 힘들다. 그런 친구와 함께 외출을 하는 날은 왠지 모르게 '운수 좋은 날'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굴 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퇴사를 하고 나서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가 룸메이트의 얼굴을 지겹도록 본다는 것이다. 회사 다닐 때만 해도 회식, 야근, 출근의 로테이션이었다. 그 때, 내 룸메이트도 이랜드에 다니고 있던 시기라 아침에 함께 집을 나오며 이런 저런 얘기 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친구의 회사는 가산, 나는 광화문, 우리 집은 용산. 나는 좀만 게으름 피우고 택시란 녀석의 손을 잡으면 20-30분이면 회사에 갔다. 그리고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또 하나의 차이가 있었는데, 서로의 회사 그리고 일에 대한 애정도 차이였다. 그게 너무 컸다. 친구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해야지! 주의였다면 나는 회사 가기 싫어... 모드였다. 그러니 난 1분이라도 더 이불에 있으려 했고, 그 친구는 더 늦게 가도 됨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준비해서 나간 거고. 그러니 더더욱 아침에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퇴사하고, 그 친구의 아르바이트(겸 인턴)가 끝나 학생 신분으로 돌아왔고 서로 시간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브런치(이 앱 말고 진짜 브런치!)를 먹거나 커피를 함께 마셨다. 내 퇴사 이후, 그 친구가"형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는데 격세지감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나는 이 친구와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한다. 우리는 함께 10시반 즈음 집 문을 나서며 말한다. "이렇게 둘 다 부지런히 움직이다니." 그렇다. 퇴사자와 방학을 맞은 학생에게 10시반은 꽤 이른 외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꽤 아침 일찍 일어난다. 어제 늦게까지 방송을 하고 2시반에 잤음에도 불구하고 7시 50분에 일어났다. 오늘은 그럴 의도가 단 1도 없었는데, 일찍 깨서 굉장히 괴로웠다. 다시 잠들면 되지... 라고 하지만 미칠 노릇이었던 게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함이란 녀석을 양 어깨에 가득 짊어진 채로 바깥을 나왔다. 그나마 우리를 맞아준 게 어제까지의 무더위가 아니었던 것이 아주아주 다행스러웠다. 말복이 끝나서 그런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스산한 바람은 약간 춥게까지 느껴졌다. 아직 가을 특유의 서늘함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런 날씨를 만들어 주는 건 역시 더위를 식혀 주는 비다.


비는 여름과 가을을 이어 주는 징검다리다. 이제 바야흐로 9월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다. 어제도 말했지만 나에게 9월은 굉장히 중요한 달이다. 투잡이 아닌 메인 잡으로 자기소개서 작성을 맞이하게 되니 떨린다. 이 감정의 출발선상에 비가 있다고 갑자기 생각해 보니 좀 웃기다. 여러 복합적 감정을 뒤로 한 채 난 오늘도 카페에 간다. 10시에서 11시 그 묘한 틈새 시간대에 카페를 가 어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점심을 함께 먹을 여자 친구를 기다리며 회사 근처 카페에서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한다. 창문 너머 유달리 파란 하늘이 오늘 나의 노곤함을 덜어 준다. 그렇게 나는 짧은 여유 시간 뒤,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 종로에 와서 나는 강의 전 이 글을 쓴다. 요새 종로3가에 오면 강의 전 꼭 찾는 곳이 있다. 맥도날드다. 맥도날드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적당한 가성비 그 대비 훌륭한 맛 등 장점이 많다. 오후 스케줄 시작 전에 내가 출근하는 피앤티스퀘어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며 이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끝내준다. 지하라 하늘이 보이지는 않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글과 커피 그리고 나 이렇게 3자끼리만 마주하니 꽉 막힌 천장을 금세 뚫어 버릴 것만 같은 무한한 영감이 샘솟는다.




나의 비는 나에게 9월을 주는 알람이다. 나의 커피는 나의 매일을 깨워 주는 자명종이다. 비가 이미 지나간 뒤의 선선한 날씨 속에서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환상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써 내려간 오늘의 글을 퇴사일기 속 여러 콘텐츠들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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