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다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사람은 중년이 되면 자기가 뭔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솔 벨로 <오늘을 잡아라> 中
요새 들어 생각해 본 적 있다. 나이 든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우리나라에서 어른이란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최근에 한 연예인 커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이 헤어지고 난 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며 SNS상에서 격하게 싸웠던 적이 있다. 둘의 나이 차가 컸다. 연상인 남자가 여자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사진 및 영상을 연이어 SNS에 올린다. 여자를 붙잡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여자, 너도 엿 먹어 봐라는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갑다. (물론 나도 고깝게 보이지 않는다.)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라며 비난을 쏟아낸다. 그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여자와의 관계를 어디 속 시원히 밝히지도 못했고, 자신은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별의 방식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비난을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나보다 나이도 꽤 잡수신 분이신데, 이제서야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연예인만 이럴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는 거 같다. 한 발 더 나아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갖지 못하는 걸 말하는 거 같다. 이 사태처럼 무조건 찡찡댄다고 해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얻지 못한다. 이 방식이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 사람은 애다. 아직 성장 덜 했으니 엄마 젖 좀 더 먹고 와야 한다. 원한다고 다 갖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며 알아 간다. 나라고 예외 없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가질 수 있던 것을 어른이 되니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면 조금만 노력하면 가질 수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쉽게 가지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어렸을 때에는 말 그대로 나의 부모님만 공략하면 그만이었다. 레고를 굉장히 좋아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레고를 사 줄 때, 꼭 조건을 걸었다. (이게 나의 성과주의라는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 준 결정적 계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경시대회에서 무조건 100점을 맞아야 커다란 성 스타일의 레고를 사 주셨다. 1개 틀리면 규모가 작은 걸 사 준다거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해서 사 준다거나 그런 거 없었다. 얄짤 없었다. 모든 대회마다 족족 상을 타 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레고를 언제나 득템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아예 못한 건 아니었던지라 꽤 자주 레고를 부모님께 선물로 받았다. 이 때, 내 머릿속에는 아! 공부만 열심히 하고 점수만 잘 받으면 레고가 생기는구나 라는 식의 공식이 머릿 속에 박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출제하는 시험을 100점 맞는 것과 수능 시험에서 100점 맞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당연하게도 수능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랬으면 내가 이 자리에 없었을 지도 모르지..) 나름대로 용을 써 가며 공부를 해 보았지만 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모의고사 때 나오던 성적이 실제 시험장에서는 안 나온다. 그 때마다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결과를 받아들여야지. 첫 도전 이후에도 몇 번이고 도전해 보았다. 노력은 120을 했지만, 점수는 80 정도밖에 안 나온다. 그러면 부모님은 내가 80 정도의 노력만 했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노력을 잘 못했다. 책상에 앉아 있기만 했지 공부하는 걸 싫어했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공부가 아니란 것을 3년 후에나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걸 다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이후에도 계속 알아 갔다. 예를 들어 군대만 해도 그렇다. 4수나 해서 대학을 늦게 갔다. 1학년이 23이었기 때문에 한 살 한 살이 나에게는 소중했다. 야속하게도 병무청에서는 나에게 군대를 오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카투사를 넣었다. 안 됐다. 다른 기대를 품고 통일이 되기를 바랐다. 2009년에 군대를 갔는데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일은 무슨..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소셜 벤처를 만든다, 캠페인을 한다, 동아리를 만든다 하며 학교 공부를 소홀히 했다. 그래도 시험 기간에는 나도 애들이랑 같이 공부를 했다. 책을 쳐다 보면 그만일 거라 생각했다. 이 역시 나의 오산이었다. 분명히 활자를 다 봤는데 머릿 속이 하얘졌다. 나 어떻게 졸업했는지 사실 지금도 의문이다. 공부만 한다고 해서 성적이 나오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활동이 너무 재미있었다. 두 개 다 잘 하는 슈퍼 파워 후배들을 보며 부러웠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내 능력 바깥의 일이었다. 이렇게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원하는 것 모두를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혹시 나에게도 그런 기적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기적은 없었고,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글을 썼다. 글 쓰는 게 재미있었고, 특정 장르의 글 덕분에 이 일로 돈도 좀 만졌다. 두 가지를 다 잡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얕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우선 한 가지, 회사 일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둘째, 두 개 다 붙잡고 있더라도 두 개 다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는 이것을 동아리 활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알았다. 나는 애초에 멀티가 안 된다. 그래서 조금은 이른 시점에 퇴사란 결정을 했다. 아직 갈길이 구만리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후회없고 즐겁고, 주변에서도 잘 한 결정이라고 해 준다. 그런 작은 격려에 용기가 난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난 또 자기소개서를 봐 줘야 한다. 요번 친구의 글도 잘 봐 줄 생각이다. 나 덕분에 붙었다는 또 한 명의 인사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