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좀 더 신중해지는 순간
너무 날씨가 좋은 토요일입니다. 퇴사 이전이라면 어제, 25일에 250만원의 월급이 제 통장에 들어와야 했지만 어제의 제 통장에선 바람만 스치울 뿐 꽃이 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슬프지 않았습니다. 아니, 슬퍼해선 안 되지요. 이 정도 슬픔에 주저앉으려고 했다면 애초에 그런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마음을 부여잡고 오늘도 브런치를 펴고 여러분에게 보여 줄 글을 써 봅니다. 제가 취업을 도와 줬던 친구들 중 직장인이 된 사람들과 카톡방을 만들었어요. 일명 '하리하리의 현직자방'! 그 곳에서 퇴사일기의 소스를 몇 개 받았고 그 중 첫 번째 소스를 글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연애
사랑이란 인류 역사 내내 언제나 해결되지 않는 숙제 같아요. 혹자는 결혼이란 사랑의 종착점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부부 분들을 보면 그 둘이 사랑하냐 묻는다면 쉽게 대답이 어려울 지 몰라요. 처음엔 뜨겁게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는 게 빠듯하다는 이유로 그 사랑의 정도가 이전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저는 자주 봤습니다.
모두에게 사랑이 이처럼 어려운데 퇴사자인 저에게는 오죽할까요? 얼마 전, 알고 지내던 간호사 친구에게 카톡을 하나 받았습니다. 예쁜 친구 한 명이 있는데, 소개팅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3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마지막 조건이 뭔가 모르게 눈에 띄었습니다. "안정된 직장" 저한테 벽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사랑에 현실적 조건이 가미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랑과 결혼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 결혼을 위해서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 가는 데다가 퇴사자라는 특수한 신분까지 곁들여 지면서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어른이 되면서 사랑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였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쉽게 나오던 "사랑해."란 세 글자가 쉬이 입밖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순수함과 패기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 단어를 남발했나 봅니다. 이젠 내가 둘러싼 현실이란 녀석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됐습니다. 어른이란 그런 거니까요. 회사를 나와서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야 하는 퇴사자다 보니 그 신중함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퇴사 이후 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모르지요. 저를 둘러싼 조건이 지금보단 한결 나아질 겁니다.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렇다고 사랑의 눈높이가 달라질 거 같지 않아요. 조건이란 요소가 빠진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사랑이란 걸 찾고 싶지만, 그걸 찾기가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걸 떠나서 사랑의 정의가 뭘까요? 제가 요새 열심히 읽는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 님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자 분들을 남자가 아껴 줘야 한다는 얘기는 자주 나오지만, 사랑에 대한 고찰은 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추구하고, 이상적 삶을 사는 조르바에게도 사랑이란 단어는 정의내리기 어려워서가 아닐까요?
세상사를 조금은 알아 가는 나이가 되었지만, 사랑을 아는 수준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막 걸음마를 걷게 되었습니다. 정처없이 걷다 보면 진짜 사랑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