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하리 Sep 18. 2018

2주 간의 공채 폭풍을 지나며

발견의 즐거움보단 아쉬움이 많았던 시간

8월 말부터 이번 주 초까지 대기업 자기소개서의 풍랑에 휩싸여 있었다. 필자도 흔히 말하는 시즌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보니 칼럼을 한 주 거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핑계일 것 같아 혹시라도 기다렸던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2주 가량의 자기소개서 수업과 방송을 거치며 내가 느꼈던 약간의 소회를 글로 풀어보고자 한다. 지난 2주 간, 꽤 많은 취준생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다들 걱정은 많았지만 자기 고민이 잘 정돈되어 있는 친구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물론 전자가 무조건 합격한다는 보장도, 후자가 무조건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취업만이 인생의 최종 goal이 아닌 만큼 분명히 인생의 고비가 찾아올 텐데 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기간 동안 생각을 많이 했던 아이들이 그것을 잘 넘길 거라 본다.




경험이 없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내가 칼럼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경험 부족 증상’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말로는 그렇게 해도 내가 자기소개서를 위해 인터뷰를 하다 보면 깊이 생각한 친구들은 대답의 퀄리티가 다르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똑같이 아르바이트를 한 애들이라도 다르다. 일례로 식자재 유통 쪽을 가기 위해서 자신의 이력(얼마 안 되는 2건의 아르바이트)에 대해 얘기한다. 이 친구가 일했던 곳은 빵집과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식자재와 이어질 만한 경험을 유심히 생각해서 그것을 나에게 말해 주는데, 정리하는 입장에서 신났다. 참고로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겠다고 나와 상담하는 애들이 자기 경험을 회사 혹은 산업군과 열심히 연결해 고민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진솔하면서도 타깃 기업/직무와의 연관성이 돋보이는 친구이다.


경험 없는 아이들의 두 번째 유형이다. ‘있어빌리티’. 소위 말해 별 거 없는 경험을 있어 보이게 포장하려는 친구들을 보면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자기도 이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없다. 그런데 뭔가 기업에 뽑히려면 자기를 포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누가 봐도 과한 과장을 늘어놓는다. 그럼 그 과장을 그럴 듯하게 풀어 내야 하는데, 또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글 전체적으로 멋진 단어들이 엄청 많이 나오는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전혀 꿰어지지 않는다. 창의, 열정, 배려, 상생 등 의미가 다른 단어들을 한 글 안에 적으면 내가 그 역량들을 모두 가진 인재라고 생각될 것 같나 보다. 웃기는 건 이렇게 글 써 온 친구랑 대화를 하면(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자신감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이 없다. 이렇게 써야 기업이 뽑아 줄 것만 같다고 하는데, 어디서 들었냐고 하면 딱히 답도 못한다. 소위 말하는 ‘카더라 통신’에 기반한 주장이다. 좀 더 질문의 방향을 틀어 그들에게 대기업을 왜 가고 싶냐? 직장인이 왜 되고 싶냐? 고 물으면 답을 못한다. 그냥 좋은 데 가고 싶기 때문에 지원하는 거라고 한다. 이 글 보는 많은 취준생들이 찔려 할 텐데, 그게 현실이다. 자기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안 하면서 대기업/중견기업 등 간판만 따진다. 학벌 사회가 만든 촌극이다. 좋은 학교에 목매 달던 우리의 학창 시절이 취업에까지 이어진다. 얼마 전, 방송을 새벽까지 하고 집에 가는데 카페에서 어떤 친구가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면서 글을 갖고 왔다. 취업 초보라 그런지 글에 자기 성과만 자랑해 놓았다. 수정을 해 주고 가는데 친구가 하나 더 묻고 싶다고 한다. 학벌이 당락에 영향이 있는지가 질문이었다. 자기소개서 내용을 보다가 이 친구 과가 특정했던 생각이 났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학교 출신이었던 것이다. 나는 냉정하게 그 친구에게 말했다. 이렇게 자기소개서 대충 쓰면 안 돼요. 학벌로 어떻게 비비려는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고 자기소개서를 대충 쓰면 분명 그것이 면접에서 부메랑으로 나에게 돌아온다. 저번 칼럼에서도 말했다. 취업 과정을 귀찮아 하지 말라고.


이번 시즌에도 대기업들이 공고를 마감하는 틈바구니 속에서도 중견, 취준생들에게는 유명하지 않은 기업들이 공고를 냈고, 마감을 했다. 대한제당이나 보성그룹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자소설닷컴 기준으로 GS리테일,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은 1000명을 훌쩍 넘는 지원자를 기록한 반면 이 기업들의 각 직무별 지원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러분들이 좋은 기업을 가겠다는 의지를 꺾으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수천 명이 대기업에 쏠려서 원서를 내면 대부분 떨어진다. 그게 현실이다. 분명히 좋은 스펙을 갖고 있고 앞에 언급했던 중견 기업들을 놓치지 않고 썼다면 붙었을 친구들이 ‘헬조선’의 현실을 욕하며 중소기업에 원서를 낸다. 대기업에 간다는 것은 SKY 대학 진학만큼 하늘의 별따기이다. 안전 장치 좀 만들어 놓고 서류를 냈으면 한다. 그리고 누구나 다 가고 싶은 그 대기업을 가기 위해 별 쇼를 다 한다. 유통 대기업 같은 경우는 몇 백개의 매장을 가서 자기가 느낀 것을 자기소개서에 적는다. 취업을 위한 쇼는 뻔히 보인다. 기업에 나를 맞출 생각 하지 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 고민의 흔적 위에 기업의 철학이나 최근 사업 등을 살포시 얹는 것을 추천한다.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높다는 것은 이제 거의 모든 취준생들이 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방법을 명쾌하게 배우지 못한 듯 보인다. 대학교에서 쓰는 레포트와 자기소개서는 엄연히 다르다. 자기의 삶을 자기 생각으로 논리 정연하게 풀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나도 자기소개서를 빨리 쓰는 편이고, 자기소개서를 라이브로 수정해 주는 방송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생각을 대충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하도 많은 친구들의 경험과 글을 보다 보니 소재를 보면 어떻게 글로 요리할 지 견적이 금방 나올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겠다. 이 칼럼이 나올 때에는 아직 서류 결과가 제대로 나오기 전이라 여러분들이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 꿈을 사전에 꺾어 미안하지만, 얼른 환상에서 빠져나오고 이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쓰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노력이 흔히 말하는 꼰대들의 노력이 아니란 것쯤은 이 칼럼을 정독한 여러분들이라면 충분히 알 것이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취업을 귀찮아 하지 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