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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Oct 05. 2018

복붙의 유혹

쓴소리로 시작했지만, 결국 잘 되길 바라는 마음


8월 말부터 시작된 서류접수는 추석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취준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는 손에 꼽고, 그 회사들은 채용의 편의성을 위해 한번에 서류 접수의 문을 열어 둔다. 이번 주만 해도 목요일에 마감하는 주요 회사가 5곳이 넘는다며 급하게 자소서 쓰는 데 여념 없는 취준생들도 많다. 중요한 건 이미 주요 기업들의 서류 마감이 끝난 상태라는 거다. 8월 말에서 9월 초만 해도 굴지의 대기업들이 같은 날 마감하면서 급하게 자기소개서 쓰는 취준생들을 카페에서 여럿 보았다. 방송을 하던 내 모습을 보고 카페에서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고 상담을 요청하던 손님들도 있었다.


특정한 산업군을 가고 싶고, 이것을 위해 오래 준비한 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타깃 없이 여러 군데의 기업을 쓰는 편이다. 게다가 가고 싶은 기업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업, 그 직무에서 뽑는 사람 수가 극히 적기 때문에 특정 기업 몇 곳만 노려서 서류 접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자연스럽게 여러 기업에 지원하게 되고, 그것이 늘다 보면 100군데 정도의 기업에 지원하는 것은 금세다. 마감 기한에 허덕여 제출에만 의의를 두는 순간, 옛날에 썼던 다른 기업의 자기소개서를 만지작거린다. 이걸 복사해서 내도 괜찮겠지 라는 유혹이 나를 엄습한다. 고민한다. 하지만 고민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른다. 안 된다고 마음으로는 말하지만, 이미 당신은 컨트롤+c 버튼을 누르고 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쉽다. 그렇게 당신은 수많은 기업들에 같은 내용의 자기소개서를 난사한다. 이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출, 그 자체만으로 분명 의의가 있다. 질문이 어렵다, 정량적 스펙이 높은 지원자들이 다수 쓸 거 같다 등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이유로 지원을 포기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그렇다고 복붙이 잘하는 짓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로 지원 기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당신이 쓰는 기업이 당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지망 기업이 아닐 수도 있다. 유통 산업을 지망하는 친구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보자. 해당 산업의 메이저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을 꿈꾸고 꾸준히 준비하는 스터디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백화점보다 한 단계 위로 치부되는 것이 면세점이다.) 그러나 마트나 슈퍼 등을 일찍부터 준비하는 스터디는 찾아보지 못했다. 상황 여하에 따라 백화점이나 면세점만 생각하던 이들이 마트/슈퍼를 지원해야 할 때도 있다. 이들이 서류를 쓰면서 기분이 어떨 지는 말하지 않아도 감히 짐작 가능하다. 의욕 제로일 것이다. 의욕이 낮은 상태에서 자기 소개서를 쓰면 과연 그 퀄리티가 좋을까? 좋을 수가 없다. 그럼 기존에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썼던(그게 잘 쓴 건지, 잘못 쓴 건지 답도 정확히 모른다.) 자기소개서를 대충 짜깁기해서 내려고 한다.


방송이나 강의를 통해 많은 자기 소개서들을 보았다. 그것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어색함이다. 예를 들면 그냥 성장 과정을 묻는 문항과 성장 과정에서 본인을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경험을 묻는 문항은 다르다. 전자는 당신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말 그대로 과정을 묻는 질문이다. 후자는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보았을 때, 기억에 남으며(‘가장’) 그 기억이 지금 떠올려 보면 시련을 유발시켰던 경험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질문이다. 질문에서 풍기는 뉘앙스의 차이를 읽어 낸다면 그 두 질문에 풀어내는 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복사+붙여넣기를 하면 당연히 두 질문의 이야기는 똑같다. 비단 이 문항만이 아니다. 글이란 것은 쓰는 사람의 그 당시 감정, 생각 등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이미 써 놓은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행위를 하는 당신은 결국 귀찮아서 그러는 것이다. 이해를 아예 못하는 바는 아니다. 서류를 제출해도 될 지 안 될지 모르고, 자기 소개서를 읽는지조차 의심스러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자기 소개서를 읽는 여부를 속 시원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다. 기업마다 채용 기준이 다르고, 자기소개서의 점수 비중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단언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다. 정성이다. 각 전형을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 당신은 그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려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월급이란 어떤 의미인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실탄이다. 그 실탄을 충전해 주는 고마운 버팀목을 찾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정성 혹은 진심이다. 내가 누구인지 진심을 다해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자기 소개서에 녹여 내야 한다. 여러분들이 그간 써 왔던 글에 진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복붙이라는 선택을 한 순간, 그 자소서에는 진심이란 없다. 읽을 때, 어색한 글을 보며 당신을 과연 만나고 싶을까? 그리고 그것이 면접에서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 모른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이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다. 자기소개서라는 영역 자체가 정답이 없고, 이것을 잘 준비한다고 해서 여러분들 모두가 원하는 기업을 죄다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에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우리는 걸어가야 한다. 가다 보면 당신의 매력을 바라봐 주고, 거기에 응답하는 기업이 나올 거다. 나는 그 날까지 이렇게나마 글로, 방송으로 당신을 응원할 뿐이다. 힘을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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