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름'을 후회하지 않고 지속해 나가리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中
빨강 머리 앤을 어린 시절 열렬히 본 것은 아니다. 내 기억 속에 이 만화는 파트라슈의 개 정도로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얼마 전, 이 만화를 열심히 봤다고 하는 친구랑 밥을 먹으며 물어봤다. 그녀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 앤이요. 낯선 곳에 가서도, 양부모로부터 실망스럽다는 얘기를 들어도 걔는 웃어요." 그녀는 캔디일까? 아니다. 그녀는 순정만화 속 주인공과는 달리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산다. 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였던 길버트와 결혼을 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도 겪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는 앤과 달리 웃지 않는다. 조그마한 생채기에도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침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한숨을 쉰다(최소한 회사를 다니는 동안만큼은 나도 그랬고, 내 동료들도 그랬다).
그녀는 왜 웃을까? 내 추측이지만, 아마도 남들과 다른 모습을 한 스스로가 대견해 보여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빨강 머리를 한 자기 모습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녀는 그렇게 웃지 못했을 거다. 가만히 앤을 보다 보니 퇴사 전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언 퇴사한 지도 반년이 넘어간다. 언제나 나는 남들과 다른 '나'의 모습을 사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회사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물론 남들과 똑같이 하지도 않으면서 일도 제대로 못하는 나에게 괘씸죄가 적용된 듯 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과 어거지로 맞춰 가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와이셔츠를 입고,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앤은 꿋꿋이 자기 길을 고집했지만 나는 나의 개성을 잠시 버린 셈 아닌가? 회사 다니는 내내 스스로가 가장 행복할 때의 모습을 알면서도 외면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마음이 계속 나를 짓누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넘게 회사를 다녔다. 결국 그것이 터져 버렸다. 바깥에 대고 나 힘들어요 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뭔가 안으로 곪아 썩어 가는 내가 보였다. 내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않는가? 과감히 사표를 내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웃기게도 염색이었다. 회사원이라면 으레 가져야 하는 모습과 완전히 결별하고 싶었다. 색깔도 일부러 밝은 갈색으로 했다(사실 당시 샤이니 민호가 컴백하면서 했던 은발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탈색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탈모로 건강하지 않은 머리 상태가 엉망이 될 거라는 단골 미용사 형아의 만류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색깔로 머리를 바꾸지 말라는 사내 규정은 없었다. 하지만 조직에 몸담아 본 분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명문화된 규정이 없어도 사내에 감도는 묘한 분위기랄까? 그런 게 눈치가 보여서 뭐라 한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염색도 해야 하나 쭈뼛댔다.
여자친구와 어젯밤 통화를 하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과연 안정된 환경이 심리적 안정까지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왜냐하면 지금 여자친구는 회사에 다닌다. 매달 25일이면 월급이 나온다. 회사가 탄탄한 편이라 월급만 생각하고 주어진 일만 하며 산다면 정말 최고의 회사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이 커리어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평생 직장 시대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 일을 할 지 모르니까. 그러면서 나를 얘기했다. 분명 처한 상황은 자기보다 불안한데 미래를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 자기보다 더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 본인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여자친구 앞이라서 한 얘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나를 믿는다.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시장에서 다른 player들과 나를 차별화시켜주기 때문에 부와 명예는 꾸준히 나의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믿는다.
확실히 지금의 내 오늘은 일반적인 30대 초반 또래들이 사는 삶과 다르다. 그 다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이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현재 나의 행복감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다름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그래서 후회도 없고, 후회해서도 안 된다. 빨강머리앤도 사람인데 어찌 슬플 때가 없겠는가? 그녀도 나처럼 스스로를 믿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댈 최후의 보루는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확고히 서 있지 않으면 언제 어떤 인생을 살더라도 불행하다. 빨강 머리를 하고 강렬하게 랩을 뿜어내는 나플라가 아니더라도, 빨강 머리를 하고 언제나 행복하게 웃고 다니는 앤이 아니더라도 나는 행복하다. 그 행복의 원천은 빨강 머리만큼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내 용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한 나의 길에 후회가 없도록 더욱 더 행복해지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되뇌인다.
나는 그대들과 달라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