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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Nov 09. 2018

한 스타트업의 잠수를 지켜보며

나의 퇴사 후 선택도 이러지 않겠단 다짐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김영하 <오직 두 사람> 中



하리하리의 연애일기 글을 사 간 뒤, 인공지능 음성 서비스로 출시하겠다는 회사가 있었다. 이번 주 초, 자기소개서 물량을 다 소화한 터라 이제 새로운 콘텐츠, 새로운 재미를 찾아야 했기에 이 때 진행되던 일이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나 궁금했다. 사실 이 서비스, 9월에 출시된다고 말은 번지르르(이 부사어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negative한 뉘앙스다)하게 나에게 한 상태였다. 두어 달이 지난 오늘까지 별 코멘트가 없자 문득 궁금해진 나는 메일을 보내 봤다. 내 글을 사고, 신분증/통장 사본까지 건네고, 입금까지 해 줬기 때문에 이 쪽에서는 최소한의 절차를 마쳤지만 신분증 사본이 그 쪽에 넘겨진 터라 조금은 민감했다.


처음에는 메일을 보냈다. 혹시 이 서비스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라고 보냈더니 하기와 같은 메일이 왔다.

여기서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이 회사와 카톡을 보냈던 이력이 있어서 뒤져 보고, 그 때 연락하던 매니저님의 번호가 카톡에 있어 연락했더니 "퇴사했단다." 그래서 회사의 근황을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다고 한다." 스멀스멀 어이없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구글링에 해당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로켓펀치에 해당 회사의 채용공고와 함께 전화번호가 올라와 있어 전화해 봤다.


지금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뚜-


뭐, 딱히 화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들도 이 회사, 이 서비스를 접으면서 얼마나 아픈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더 searching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들은 올 여름, 나에게 연락하면서 창창한 비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저희가 하리하리님의 연애일기 콘텐츠를 유인나 목소리로 녹음할 거에요. 라면서- 가능성이고 소위 말해 빅픽처였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품성을 인정받은 거니까. 앱도 테스트 버전으로 나와 이것이 앱스토어에 공식 출시되기를 알게 모르게 기다렸다. 하지만, 결말이 이렇게 되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갈 때에도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회사에 간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나서 내가 동기들 사이에서 LG그룹에서 육성하는 우수 인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이미 그 때에는 회사에서 몇 번 사고도 치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뒤였다. 회사 일보다 자소서 쓰는 일이 더 좋아서 회식이 끝나고 나서 쉰 게 아니고 그 다음 날 마감인 자소서를 써 주기 위해 아픈 속을 부여잡고 1-2시간 전에 일어나 600자를 엄청난 속도로 써서 toss한 적도 있었다. 그 결말은 결국 퇴사 후, 지금과 같은 삶이다.


사실 이 삶마저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특히 내년 초 상반기 공채 전까지 약간의 비수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긴장을 잔뜩 하고 있다. 강의도 여러 개 알아보고 있고, 내 네트워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엄니는 저번에 저녁 먹으면서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했지만, 즐겁다. 최소한 나는 이 일이 즐겁기 때문에 이 회사처럼 안타깝게 끝나지는 않을 거다. 그래야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눈들에게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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