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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Nov 12. 2018

모두의 시선에서 비껴나 있다는 것

바보끼리 모여 바보가 아닌 이를 바보라 욕하는 모습

바보란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 떠벌리지 못해 안달이 난 인간들을 말합니다.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中


최근 들어 갑자기 퇴사할 때가 생각난다. 그만둔다고 하니 다들 묻는다. "뭐 하려고요? 나가서?" 그 때, 글 쓴다 혹은 아프리카TV BJ한다고 하니까 의아한 시선으로 보던 많은 이들의 눈빛이 지금도 기억난다. 사실 그들의 시선에 보이는 내 모습은 기괴해 보이기 이를 데 없었을 거다. 어떤 친구는 나보고 LG를 버리고 이 일을 하다니 용기있다고도 했다. 그랬겠지. 말은 좋게 포장해 줬지만, 그 이면에는 굳이 편한 길을 놔 두고 왜 힘들게 사느냐의 뜻이었을 거다. 실제로 엄마는 저번 주에 만나서 나에게 대놓고 말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


나에게는 회사에서의 삶이 더 힘들었다. 특히 요새같은 일종의 비수기에는 한치 앞을 내다 보기 어렵고 매일 매일 빡세게 영업해서 겨우 두세 명 강의실에 앉혀 놓는 게 전부인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즐겁다. 농담삼아 회사원들에게 자랑하는 거지만, 나는 잘 때 스마트폰을 꺼 두고 알람 역시 맞춰 놓지 않는다. 기계를 쉬게 해 주는 것이 기계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나의 퇴사후 삶은 남들과 다르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겠지만 내 세상에서만큼 나는 정상적이다. 그리고 루트가 조금 엇나간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내가 인정받을 만한 성공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도 그 미래를 꿈꾸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을 글로 남긴다.


다수결의 힘은 이처럼 무섭다. 다수결에 속하는 이들은 소수의 다른 생각을 갖고, 독특한 삶을 선택한 나에게 관심도 많고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리고 대개 그들이 예견하는 내 미래는 부정적이다. 딱히 잘 될 거라고 보지 않는 거다. 결국 다른 선택을 내가 그들에게 박수받는 방법은 피부에 와 닿는 압도적 성공뿐이다. 이런 의식을 갖고 하루 하루 살아가기 때문에 함부로 몸을 축 늘어뜨릴 수 없는 것이다.




사실 퇴사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봐서 그렇지,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정상/비정상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사안들이 참 많다. 분야를 막론하고 그렇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싫어해서 그런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동굴을 찾아 다닌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영역을 형성하게 된다. 흔히들 이것을 커뮤니티라 부르기도 한다. 나와 생각이 같은 동지가 있다는 것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든든한 언덕이다. 다만 그 언덕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전체를 지배하면 안 된다. 이 세상은 당연하게도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가 필수이다. 저 같은 경우도 자기소개서 써 주는 일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아이들과 인터뷰를 했고, 그들의 개성을 끄집어 내는 게 중요하지 그들의 생각에 토를 달거나 비판을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제가 그들의 삶을 살아 줬던 것도 아니고, 그 삶에 우리가 인터뷰하기 전까지 단 1%도 기여한 게 없으니까. (실제 최근 제 좌우명은 "그럴 수 있다"입니다.)


실제로 내 SNS에는 같은 사안이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한 담벼락에서 볼 수 있도록 일부러 페친들을 맺었다. 소위 말해 물갈이였고, 그 작업은 몇 년 정도 걸렸다. 정말 어렸을 때에는 스펙이 좋은 사람, 소속이 멋진 사람과만 페친을 맺고 그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철이 들고 나서 그런 것들이 백해무익한 일임을 알았고 이제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조금이라도 균형감 있게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종이 신문 한창 볼 때, 한겨레랑 중앙일보 같이 보던 그런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의식적으로 신경 씀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송해 선생님이 보여 준 Openness 태도를 보고 난 한참 멀었단 생각을 한 적 있다. 그건 바로 아래 링크로 달아 놓겠다. 핵심만 말하면 아흔이 되신 송해 선생님이 퀴어 축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단 거다.



타인의 삶에 내가 너무 깊이 기여해도 문제이지만, 타인의 삶을 내 시선에 근거해서만 바라보는 것도 문제이다. 그리고 내 시선만 정답이고, 나와 다른 삶은 오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더 문제다. 자기가 함부로 객관적 현상에 주관적 채점 기준을 들이밀며 나를 오답이라고 밀어넣는 순간, 그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거다. 물론 그 잘못마저 이해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나와 엮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바보들과 한 배를 타면 그 배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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