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의 귀가 얇았다면?

평범함과 다름의 조합에는 평범함의 확신이 필요하다

by 하리하리

누군가의 자유로운 마음은 타인도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무심함과 강함이 필요하다.


요시모토 바나나 <프롬 히어 애프터> 中



빨강 머리 앤 시리즈 두 번째, 나는 이번에 길버트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앤과 길버트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 친구였고, 그 둘은 결혼까지 골인했다. 이 정도 이야기는 다들 안다. 만약 길버트가 친구가 많은 인싸고, 앤과의 연애 및 결혼을 친구들에게 발표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지를 상상해 보았다.

나, 앤이랑 결혼해.


모르긴 몰라도 다들 "앤 걔~? 빨강 머리에 주근깨도 많고 이상하지 않냐?" 이럴 공산이 크다. 당시 보통 사람들 눈에 앤은 다르게 비춰지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다름'을 용인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대다수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을 거부감 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들의 입방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라면 더 심할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대소사에 관심이 참 많다. 특히 결혼이라면 더 심하다. 자기들이 당사자의 인생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도 아닌데 쉽게 평가한다. 이런 주위의 시선과 말을 피할 수 없다면, 길버트의 마음이 중요해진다. 남들과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갖고 있는 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주위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소꿉친구라는 특수한 관계여서 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녀의 희로애락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녀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런 확신있는 태도로 자신의 사랑을 밀어붙인 길버트를 보며 내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불안정하다. 사실상 무직이고, 글쓰기를 업(業)으로 삼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불안정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인 32살이다. 그렇다고 여자친구 역시 현실을 모를 나이가 아니다. 안정적 회사에 다니는 이 친구가 나를 선택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난 달과 이번 달까지는 자기소개서 수요가 높은 시기라 매일 10만원 정도씩의 매출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수요가 줄어들 시기가 도래했다. 물론 이 춘궁기에도 강의 등을 잡으며 매출을 이어갈 만한 나만의 방책을 마련해 두었지만 이것이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여자친구에게 난 곧 몸값 5억이 될 거라고 말은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는 것뿐이다.


여자친구 주변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평가는 분명 엇갈릴 거라 생각한다. 여자친구 앞에서 말은 다 하지 않더라도 불투명한 미래를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생각 역시 가지각색일 것이다. 여자친구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가 사귄 지는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랑은 꽤 굳건한 편이다(나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이것은 전적으로 여자친구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데이트를 할 때에도 부담이 많이 드는 부분에 있어서는 저에게 말하지 않고서 먼저 준비하는 세심한 친구다. 그럴 때마다 미안함이 앞선다. 여자친구는 자신이 사는 동네까지 꼬박꼬박 데려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하지만, 내가 차로 태워 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한다(글쓰기 일을 하겠다고 퇴사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게 차를 판 거였다. 사실 그 당시에는 누구와 연애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현금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자친구와 사귄 지도 갓 100일을 넘어갈 뿐이고 결혼을 얘기하기에도 시기상조이다. 농담처럼 5억이 생기면 프로포즈할 거라고는 하지만 정확히는 내가 그 정도 몸값을 받을 정도로 클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처럼 일감이 확 줄고 나니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다른' 나를 안아주는 여자친구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이런 '다른' 내 옆에 '평범한' 그녀가 있어 주기 때문에 '다름'을 밀어 붙일 수 있다. 길버트와 앤이 결혼할 때, 앤은 선생님이었다. 안정적 직업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이 일을 나의 남은 평생을 책임질 수단으로 정한 마당에 더욱 성공으로 내 인생을 끌고 가야 한다. 그리고 이 '즐거운 의무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데 당신의 존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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