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으로 나는 된다고 믿어라
꿩이 내달은 길은 고라니 길이 될 수 있고 고라니 길은 사람 길이 될 수있다. 사람이 걸어 다닌 길은 큰 차도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막 꿩이 낸 길은 길의 새싹인가. 길들은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며 서로 만난다. 길끼리 만나지 않는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섬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함만복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中
하반기를 돌아보며 내가 가장 기특해 하는 친구가 몇 명 있다. 우선, 이번에 60여개가 넘는 곳을 쓴 친구다. 초반에는 서류가 많이 안 돼서 힘들어 하다가 막판 들어서 연속으로 서류도 되며(10개) 결과를 잘 만들었고, 아직까지 3개의 기업이 전형 진행 중이다. 내가 곧잘 말하는 게 하나 있는데, 이 시기까지 전형이 진행 중이라면 성공했노라고 말해 주는 편이다. 그리고 서류가 10개 가량 되었으니 그 친구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이 친구는 문과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곳을 쓸 수 있었냐고 사람들이 물을 수 있다. 어디든 닥치는 대로 써야 한다고 말은 듣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친구는 국제통상을 전공으로 하고 있다. 즉, 범용성이 넓은 전공을 택하다 보니 어디든 붙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이 친구의 머릿속에도 쓰면서 아, 여기까지 써야 하나? 과연 이걸 써도 잘 될까? 라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런 부담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취업 과정을 버텨 냈고, 나는 그가 잘 될거라고 단언한다.
두 번째 친구가 있다. 얼마 전에 나와 면접부터 시작해서 이름 있는 회사의 인사/노무팀에 합격한 케이스다. 사실 이 친구는 어쨌든 될 친구였다. 처음부터 이 친구가 인사 직무에 관심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마케팅이었는데 직접 필드를 겪어 보니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빨리 파악했다. 그리고 인사 쪽 인턴을 2번 했다. 하지만 이 친구의 약점은 소위 말하는 정량적 스펙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 친구가 이 선택을 하면서 불안했을 것임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이 친구 역시 자기 선택에 대해 확신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실무 스펙을 쌓았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 세 번째 친구가 있다. 오늘 나에게 들려준 소식이다. 석사까지 전공한 친구인데, 이공계 석사는 겪어 보면 알겠지만 참 양날의 검이다. 왜냐하면 이 친구가 전공한 연구 분야, 산업군이 경기 침체로 사람을 뽑지 않으면 대안이 없다. 문과 분들에게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들릴 수 있지만, 분명히 이공계도 고충이 많다. 전공 간 차이가 너무 커서 말이다. 완전히 딱 맞는 전공이 아니지만 의미 있는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이 친구에게도 역시 축하를 보낸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살펴 보면, 자기를 둘러싼 상황이 불안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우보천리'의 정신으로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행보가 나름대로 유의미한 성과로 돌려받은 것이다. 저성장이다, 경기 침체다, 헬조선이다 라는 말들이 많다. 다들 포기한다, 나라가 해 준 게 뭐냐? 이런 말도 많다. 'K-Move' 외국 취업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많다. 어떻게 살더라도 지금 이 나라에서의 삶보다 더 좋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맞다. 나도 그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이 상황에서 과연 당신이 있는 힘껏 최선을 다했는지는 한 번만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자소서를 쓰더라도 좀 더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고민해 보았는지, 내 니즈만 고집하지 않았는지, 그 니즈를 고집할 만큼 관련 역량을 쌓았는지 등 좀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안다. 이런 얘기 자체가 오히려 역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막말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자신을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그런 여건이 조성된 적이 없었다는 것도 잘 안다. 힘들겠지만, 이제부터 나 스스로를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한다. 그래도 나랑 호흡을 맞춰 취업을 준비했던 3명의 친구들은 자기 스스로의 니즈나 삶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았다. 결과를 떠나서 이런 고민은 어떻게든 나에게 약이 된다. 사실 평생 직장이 더 이상 없는 시대이고, 결국 누구나 이직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 과정에서 내 삶의 기준점 혹은 가치관을 분명히 알고서 움직인다면 좀 더 만족스러운 커리어 패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깨알같지만 결과를 만드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이라고 해서 이 글을 보고 있는 대다수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요새는 학교가 좋다고 해서, 갖고 있는 스펙이 뛰어나다고 해서 무작정 뽑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신입이라면 경력이 없기 때문에 내 삶에 대해서 얼마나 진중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고민을 회사와 얼마나 접목시켜 보았는지, 내가 갖고 있는 삶의 비전이나 신념 등을 풀어 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들 자체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 시간 낭비라 여길 수도 있다. 토익 공부나 자격증 공부 등을 평가절하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 투자하는 시간 못지않게 이런 고민들을 하는 데에도 시간을 쏟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소한 내가 예로 든 3명의 친구들은 나의 가이드 아래에서 그런 고민을 조금이라도 했던 것 같다. 마지막 한 마디만 하고 마치겠다.
취업은 절대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