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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Dec 16. 2018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다

무조건 잡고 보세요

가진 자가 더 갖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세상에서, 나는 그냥 밥 먹고 숨 쉬고 애들 키우고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된다.


은유 <쓰기의 말들> 中



이제 진짜 바야흐로 하반기가 끝났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자소서 및 관련 강의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그 수요가 확 줄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공채는 열리고, 누군가는 면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상/하반기 공채라 해서 2월과 8월, 설과 추석 직후부터 본격적인 문이 열린다고 알고 있다. 보통 지금 이 맘 때, 우리는 상반기를 준비한다고들 말한다. 일단 이 말에 대해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첫째, 과연 우리가 준비한다고 해서 그 회사를 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 스터디를 통해서 기업이나 산업군의 정보를 수취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회사 인턴 출신, 그 회사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사람, 동종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뒤 좀 더 큰 회사로 신입 지원을 하는 이들 등만으로도 최근의 평균적 기업 직무별 TO는 다 채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에 경력도 없으면서 바깥에 나와있는 정보만으로 우리가 전문성을 뽐낼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둘째, 평생 직장이란 개념은 아예 사라졌다. 우리는 어느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그 회사가 나를 평생 지켜 줄 거란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것이 좋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시작하게 될 당신의 커리어를 이후 어떻게 전개시킬지 차라리 이런 개인적 관점으로 고민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내가 이전에 다니던 회사가 LG그룹에서 홍콩계 사모펀드로 팔리는 걸 볼 때에도 그랬고, 이번 하반기에 SPC에서 '입사 후 본인의 목표를 개인 커리어적 관점에서 서술하시오'란 문제가 나온 것도 그렇고, 이제 회사들도 더 이상 개인을 지켜 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각자 언제나 긴장감을 갖고 나를 지킬 무기를 만들어 놔야 한다. 경우는 다르지만, 취준을 할 때에도 섣부른 포기는 독이다. 나의 어떤 가능성을 회사가 봐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 2명의 친구를 소개하겠다. 이 친구들이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여기 한 친구가 있다. 두 개의 기업 면접이 겹쳤다. 괴로워하던 이 친구는 저에게 어느 기업을 포기해야 할지 묻기 위해 찾아온다. 내가 말한 답은 제3의 길이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무조건, 죄다 살린다. 유감스러운 말이지만, 집안 어른 한 분을 몸져 눕게 하자는 컨셉이었다. 아주 다행인 것은, 두 곳의 위치가 애매하게 멀었다. 서울 한복판과 경기도였다. 나는 우선 소중한 사람이 경기도 면접 보는 지역 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 보면 어떠냐고 물어봤다. 듣고 보니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는지 그 친구, 그대로 했고 한 회사에서 면접 시간을 아침으로 당겨 주었다. 우리 둘다 참으로 감사한 결정이라며 좋아했고, 곧 그 친구는 그 회사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친구와 그 회사 사이에 케미스트리가 잘 맞았기 때문이리라. 붙을 거라고 본다.


두 번째 사례다. 역시 비슷한 경우다. 서류에 많이 붙어서 승승장구하던 친구의 이야기다. 이 친구가 울상이 되어서 나에게 카톡을 줬다. 요는, 3곳의 기업이 인적성을 같은날에 본다는 것이었다. 내가 더 속상했다. 선택지는 총 2개였다. 오전과 오후에 나눠서 두 곳을 보고 이동 시에 퀵서비스로 이동하는 방식, 딱 한 곳만 보는 방식. 후자에 지원하는 기업은 지난 시즌에 붙어 봤던 그룹사의 계열사라 인적성에 자신감이 있었다. 안정적 길을 택하느냐? 위험 부담이 있는 길을 택하느냐? 사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뭐가 붙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 내 추천은 전자였다. 처음 보는 NCS 유형의 필기, 생소한 그룹사의 인적성 등 위험 요소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모를 늘리는 것이 무조건 맞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반신반의하며 했던 그 친구의 선택은 인적성 두 곳 모두 합격으로 돌아왔다.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일 지 모르지만, 기회라는 것은 언제 또 다시 나에게 올지 모른다. 그 기회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기회란 것이 나에게 데굴데굴 굴러서 왔다면, 잡든 못 잡든 기회를 향해 손을 뻗어 봐야 한다. 뻗어 봐야지,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이 간다. 그리고 그 기회가 나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인도할지 모른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나의 잠재 능력이 발현되기도 한다. 사실 취업 뿐만이 아니라 인생사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능력이라고 썼지만, 이것이 용기일 수도 있다. 과감한 용기 때문에 그 기회가 나에게로 걸음 한다. 가까워지는 기회를 보며 내가 용기를 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집 공고 중인 회사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청호나이스나 스템코 같은 곳 등은 조금만 조사해 보면 시장에서 꽤 이름 있는 기업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을 간과하지 않고 지원한다면 당신들은 아마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커리어를 시작할 지 모른다. 사람은 기대하지 않았을 때, 오는 기회에서 더 큰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그 발견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설렌다. 그래서 나는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기회를 찾아 다니는 사람인가 보다. 취준생 친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커리어를 얼른 시작하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누구보다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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