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인 나의 공허한 감성을 채워주는 곳
매 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이 삶이고, 그것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 테지.
은희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中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내가 바 라라 라디오를 알게 되고, 계속해서 찾게 되기까지. 작년 11월 즈음이었나? 개인적 일정으로 모교를 왔다가 시간이 붕 떠 정말 우연히 봤던 곳이었다. 다른 글귀보다 나를 자극했던 건 딱 4글자였다. '혼술 환영'. 정말 예상치 않던 타이밍에 나는 그 곳을 알게 되었다. 그 공간은 마성이다. 그 곳에는 나의 외로움을 덜어 줄 만한 유사 영혼들이 가득했다. 사장님 특유의 심드렁한 분위기도 예술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한 번 꽂히면 꼭 그 곳만 가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나는 소위 말해 이 곳의 단골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내가 정했던 최애 가게들이 문을 닫는 아픈 역사가 많아서 이번에도 불안했다. 숙대에 있던 카페 '격'이 그랬다. 전전 여친이 나에게 "오빠가 가면 좋아할 거야."라며 추천해 준 곳. 왜냐하면 사장님과 두런두런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 위에서 눈오는 숙대 골목을 보며 잔잔하게 미소짓던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 묘한 설렘이 느껴지는데 사장님의 신상이 갑자기 변해 문을 닫았던 아픈 곳. 회사 다닐 당시, 사귀던 여친이 고시 준비를 하던 관계로 연락도 뜸해 휴가 갈 곳이 없던 나를 언제나 맞아 주던 곳. 그 도피처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참 많이 슬펐는데 나에게 다가와 준 바라라 라디오의 존재가 참 고마웠다.
공간에 애정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 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나의 술맛, 커피맛을 살려 주었다. 아! 올 초 2개월 간의 리뉴얼을 거쳐 이 곳은 낮엔 커피, 밤엔 술을 파는 곳으로 바뀌었다. 낮과 밤의 사장이 다르다. 낮에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한 방울씩 내려서 주는 낮 사장님도, 우두커니 앉아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줄 것처럼 있는 술만 파는(안주 없이!) 밤 사장님도 각자의 매력이 있어서 참 좋다. 그래도 낮 사장님보다 밤 사장님을 더 오래 봤기에 밤 형 얘기부터 해야겠다. 사실 이 형과 급속도로 친해진 것은 이 형이 첫 가게에서 두 번째(지금의 장소)가게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잠깐의 휴지기를 가졌을 때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꽤 추운 겨울, 어렴풋이 비슷한 아픔(당연히 이성 문제ㅋㅋㅋ 남자끼리 모이면 그렇지)을 갖고 있다고만 알던 나와 사장 형 단 둘이 미스터 국밥에서 기울이던 술자리가 참 좋았다. 앉은 자리에서 6병을 먹었는데도 안 취했다. 얘기꽃이 안주 같았다. 이성 문제를 넘어 삶을 바라보는 관점, 타인을 대하는 방식 등 의외로 여러 부분에서 유사한 점(그 형은 그리 생각 안 할 수 있다. 전적으로 내 주관)이 많다는 것을 발견해 참 좋았다. 사람 가려 사귀는 게 의외로 심한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우리는 그렇게 조금 가까워졌다.
낮 카페 사장님은 겉모습만 보면 정말 구김살이 없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고 그런 행복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둘이 가까워진 계기는 바로 이 '브런치' 때문이다. 정말 운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내가 올린 글들을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봐 주는 것을 얘기했더니 자신도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고 싶다며 작가가 되기 위한 컨설팅을 해 드렸다(참고로 이 분은 비교문학 석사다. 내가 이 분의 글을 컨설팅하다니...ㄷㄷ) 안타깝게 떨어졌고, 최근 들은 소식은 아예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 뒤에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렇게 가까워졌지만 개인적인 교감을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와인을 먹으며 나눈 얘기는 꽤 깊었고, 삶의 한 구석에 조금의 결핍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결핍을 티내지 않는 것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느꼈다. 이렇게 난 나의 하루 온종일을 책임져 주는 든든한 버팀목을 만났고, 그 만남을 1년이 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올려 본다.
바라라 라디오에서는 만남도 있고, 이별도 있었다. 전적으로 이 공간에서만 만들어 준 인연들이었다. 그 만남이 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 그 친구가 이 곳에 자주 가는 내 모습을 싫어했다. "사람이 밤엔 잠을 자야지!" 물론 맞는 말이었지만, 이별을 하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이 바라라 라디오였다. 어쩌면 당연했을 지 모른다. 사람에게는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지고, 그 하루의 대다수를 채우던 누군가가 떠나 또 다시 나의 부족함을 메울 것이 필요했다. 역시 떠오르는 곳은 이 곳이었다. 한 달여 만에 그 곳을 방문했다. 다행히 이전의 내 최애 공간과는 달리 여전히 이 곳은 그대로라 좋았다.
최근에는 폴딩 도어도 달아서 그 안에서 옆 가게 눈치를 안 보고 더욱 신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곳만 갔다 오면 취기의 힘을 빌어 무의식 중에 안주를 먹으며 술을 먹으니 내 몸무게가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만이 주는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여기와 떼려야 뗄 수 없나 보다. 게다가 퇴사까지 했으니 여유도 많아졌고, 어디 갈 때가 없으면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는 이 곳으로 간다. 바라라 라디오에.
To. 라형
홍보해서 미안해요 ㅋㅋ 다음 주 목요일부터 가는 글 쓰기 모임의 주제가 술이고, 지난 주 주제는 커피였더라구요. 커피와 술을 같이 파는 이 곳이 최근의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잖아. ㅋㅋ 확실히 글에 들어갈 글감에 애정이 강하니 한 자 한 자 깊이가 뚝뚝 묻어남. 좋아요 :) 오늘 혹은 내일 저녁에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