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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특히 돌아가는 것 같다

템플스테이에 다녀와서

by 하리하리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


정희재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中



템플 스테이에 다녀왔다. 사실 이 템플 스테이를 신청할 때만 해도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요인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게 아마 한 달전쯤이었을까? 정말 신기하게도 한 달 새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우후죽순처럼 - 일부터 사람 관계에 이르기까지 - 내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노크 소리에 신경도 안 썼지만, 그 소리가 갈수록 커지다 보니 차마 간과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문을 열고 말았다. 그 문을 열어 보니 사실 그간 다락방에 묵혀 두었던 나의 단점들이 나에게 밀린 일감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것을 오롯이 혼자 마주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템플 스테이는 나에게 정말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 템플스테이를 하고 온 나는 과연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었다. 슬프다. 고민을 두고 오지 못해서. 그렇다고 의미가 없었던 건 아녔다. 지금도 내 귓가에 스치는 스님의 얘기를 몇 가지 해 보려 한다.


"모든 상황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같은 상황이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 스님은 템플 스테이를 주관하는 분이셨는데, 처음에는 큰스님께서 템플 스테이 담당을 하라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매일 염불을 외우고 수행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영어 공부를 하며 외국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자신이 가이드처럼 준비해야 한다니 내가 그 상황이었어도 그 스트레스가 쉬이 짐작이 간다. 그런데도 스님은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하셨고, 하다 보니 아, '템플 스테이도 수행의 일부구나' 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깨달음으로 템플 스테이를 준비하니 모든 상황들이 자신에게 즐거움이었다고 하시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근래 나의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과거에 내가 했던 말들이나 내가 썼던 글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부담을 줬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후회란 굉장히 쓸모 없는 감정 같구나 라고 생각했다(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후회가 말끔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오늘 템플 스테이 후, 4시간 동안 와인을 먹으며 역대급 궁상을 떤 이후 조금은 마음이 나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소비하기엔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이 후회란 감정은 2018년이 저물어 가면서 함께 여기에 두고 가야겠다고 생각해 봤다. 물론 이게 말로만 그럴 뿐 잘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해 봐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권력욕이란 건 굳이 권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 뭐냐? 그건 바로 내 맘대로 뭐든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착각이었다. 찔렸다. 오늘도 꽤 오랜 대화를 하며 다시 한번 마주한 결론은 '여전히 나는 어리다'는 것이었다. 올해 들어서야 혼자 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는 후배가 대학교 1학년 때, 겪었던 일을 이제 겪는다는 것만으로도 자괴감이 한가득이었다.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서 홀로 서려다 보니 겪는 시행착오는 사실 성인이라면 한번쯤 찾아오는 통과의례 같은 것인데, 나는 너무 늦게 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후회라는 것을 알지만, 뭐 사실인 걸 어쩌랴? 불확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허상인 확실함을 쫓아 왔다. 내 세계에서 단 1%라도 길이 보인다면 나는 그것을 진리라 믿었다. 분명히 예외가 더 많은 상황에서도 작은 가능성에서 희망을 쫓았다. 어린 시절부터 박힌 습관이다. 이것을 쉽게 버리기 어렵다는 것이 나를 하루 종일 힘들게 했다. 같이 얘기했던 친구들이 다들 독립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 왔고, 그런 생각을 나처럼 노력을 통해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여러 가지 화두들을 던져 주셨지만, 정말로 기억에 남는 건 두 가지였다.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애초에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조금은 기대했다. 서두에 말했듯이 삶은 먼 여정이다. 요새 더욱 느끼는 거지만, 내 삶은 정말 어렵게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 듯 하다. 진짜 늦게나마 뭔가 제대로 된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이 글 말미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줄넘기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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