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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오해는 진실에 다가가는 길

선생님을 만나고 온 나, 이번엔 책이다

by 하리하리

이 글의 후속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항시 나를 가장 오해하기 쉬운 존재는 오히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안다는 그 확신에 찬 전제가 늘 속단과 오해를 부른다는 걸 알기에, 나는 누굴 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이석원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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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사실 이론상으로는 잘 알고 있다,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게다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아내서 자기 자신도 몰랐던 결과물을 만들어 전달해 주는 것이다. 필히 진행되는 인터뷰 과정에서 내가 언제나 조심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대개의 아이들 마음 속에 열등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 굳이 나까지 그것을 들추어 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어른들이 취업이란 화두로 아이들에게 압박을 가하는데 나까지 좀 우위에 서 있다고 해서 그들을 쪼을 자격은 없다. 그런 것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 일상 생활에서도 남을 단순하게 남으로서만 보는 걸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책 '미움받을 용기2'에서 내가 갖고 있는 마음 내에 엉켜 있는 실타래의 근원을 찾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걸려 있었다. 미움받을 용기2에는 도서관 사서를 하다가 한 철학자와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어 중학교 선생님이 된 주인공이 나온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중학교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려고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이들이 말을 잘 안듣는다. 결국 야단을 치거나 회초리를 드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사랑을 얘기했던 그 철학자에게 소위 말해 따지러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결국 그도 아들러의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기에 '오해'가 생겼고 그 오해를 바로잡아 가며 참교육자로 나아간다.


책을 덮고 생각해 봤다. 나는 살면서 오해한 적이 없었을까? 웃기는 건, 나는 스스로가 사람들을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것을 최근에 발견했다. 자기소개서를 도와주다 보면 필히 그들의 마음 깊은 곳 얘기를 듣게 되는데 그 얘기를 들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진실되게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전제가 잘못되었다. 그들은 나랑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자기소개서를 진실되게 써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인터뷰를 유도한다 한들 자기 심연의 이야기까지 꺼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착각이었다.


결국 제가 인터뷰이들이 진심을 토로한다고 믿으며 글을 썼고, 그 믿음은 제 세계 속에서 사실처럼 굳어져 버렸다. 종교 같은 거죠. 종교를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면 절대로 모든 교리를 일일이 이해하는 게 어렵다. 어떤 부분을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믿음의 영역이 필히 들어가야 한다.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와도 교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제가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꼭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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