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문신과 새해인사에서 느낀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마도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일 것이다.
김중혁 <모든 게 노래> 中
얼마 전, 눈썹 문신을 했다. 이유는 나의 친한 동생이 제발 좀 하라고 성화를 해서가 컸다. 처음엔 엄청 귀찮았다. 그리고 되게 아플 것 같아서 막연하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하는 내내 예상대로 엄청 아팠다. 그래도 하고 나니 진해진 눈썹을 보며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아름다움은 아픔을 수반하나 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조금씩 몸의 털이 빠지는데(눈썹의 털도 시간이 지나면서 빠지지 않았을까?), 그 털이 더 이상 빠지지 않고 내 안에 오래 남아 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눈썹 문신을 하지 않을까? 사라지는 털을 이렇게라도 잡아 둔다면 상실감이 조금은 덜할 것 같은 마음.
설을 앞두고 새해 인사를 돌렸다. 뭐, 대개 내가 하는 일 특성상 지난 시즌에 나와 함께 자기소개서를 썼던 친구들에게 돌리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그저께인가? 어떤 기업을 구글링 방송을 하다가 같이 조별 과제를 했던 친구 중에 그 기업의 계열사에 다니는 친구가 생각났다. 뭐 오랜만에 인사하는 이들에게 연락하는 게 거의 뻔하지 않은가? 핑계김에 연락했다는 둥. 그런데 그 친구의 태도가 너무 차가워서 살짝 당황했다. 대화만 보면 내가 그 친구에게 도를 아십니까? 라고 전도라도 할 법한 느낌이었다. 결국 두어 마디 하다가 그 친구의 차가움에 되려 내가 대화를 멈췄다. 그 친구를 포함해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렸던 자리가 그리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라는 것도 물론 내 기억 속의 편견일 수 있지만) 차가운 답장을 보니 마음이 쌩해짐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런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를 잊지 않고 먼저 연락해 준 친구도 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사실 눈물겹게 고마웠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잘 하지 못했고, 결혼식을 먼 지방에서 하는지라 축의금이라도 보내주겠다며 호언장담하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깜빡해 마음의 짐이 있던 친구였다. 그래도 먼저 카톡을 해 주는 그 친구의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괜히 미안했다. 다음 번에 남자 넷이 보자고 하는데 그 술자리는 꼭 내가 대접하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시즌을 준비하며 새해 인사를 겸하다 보니 나에게 소중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연락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내가 연락하는 모든 이들이 나의 연락을 정말 반가운, 기다렸던 이의 연락으로 생각해 주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일렁이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도 그 연락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어느 누가 나에게 일으키는 '외로움'이란 바람도 그 따뜻한 온기 한 번이면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그리고 올 시즌에도 새로이 나와 알게 되고, 인연을 맺을 이들 중 보석 같은 사람들이 많기를 바란다. 근 몇 달 간의 시간을 거치며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 생각보다 유약한 사람이었음이 밝혀졌거든. 처음에는 그걸 부인하다가 이제는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