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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Jul 15. 2018

여름밤에도 귀기울여 봄직한 이야기

사랑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하루키를 본다

오늘 여름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봄날이 그리운데요? 사람이 참 간사합니다. 봄날에는 여름 휴가를 가고 싶은 마음에 언제 여름이 오냐? 라면서 달력만 쳐다보고, 막상 여름이 오니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흐르다 보니까 아 솔솔 불던 봄바람이 생각납니다. 여튼 봄 생각이 간절한 요즘, 이 책의 제목만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건 바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입니다. 이 제목만 보고 낚인 게 없지 않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운명적 여자와의 만남을 타이틀에 떡 하니 박아 놓다 보니 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책 전반적으로 연애 혹은 사랑에 대한 단상을 다루는 게 아닐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정말 발톱의 때만큼 분량이구요. 사랑 외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여러 가지 감정과 조우하는 사람들을 멀리서 담담하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최근 종영했던 tvN의 '나의 아저씨'도 제목만 보고 많은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출연을 결정한 아이유에게도 이전에 발표했던 23란 노래가 로리타 논란에 휘말렸던 만큼 이번 드라마 역시 40대 이선균과의 사랑이 주가 될 거다 라면서 방송도 되기 전부터 악플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드라마 절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이것도 궁금하시면 한 번 봐 보시는 걸로...^^)


출처: ize




물론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파트에 우연히 스쳐 가듯 만난 그녀와의 인연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파트의 글들은 솔직히 말해서 훤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유령, 불륜, 가난 등 기상천외한 소재들을 글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소재들이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한 택시 기사가 승객에게 유령의 존재를 믿냐고 물어보는 파트! 이걸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유령이란 게 과연 내 주변에 없을까? 유령의 뜻을 찾아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건 '죽은 사람의 혼령'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령 단체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 내용이 존재하지 않거나 거짓을 지칭할 때에도 유령이란 말을 씁니다.


SNS가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면서 유령을 그 속에서 너무도 흔히 만납니다. 이른바 가계정이라 부르는 녀석들입니다. 팔로워 숫자를 더 끌어 모으기 위해서 가계정이란 가면 뒤에 숨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삽니다. 저 역시도 그런 가계정 혹은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그렇게 관심을 받는 것에 만족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계정들의 규모가 과도하게 커지면서 가계정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했고요. 그 관심을 부당한 방법으로 얻는 사람들도 많고요.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출처: NEWSIS, 다음 / 유령들이 만드는 사회적 살인


이뿐만인가요? 유령들이 가상 공간 안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사회적 살인'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악플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도 하고, 이제 그런 악플들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가상 공간이 실제 공간 못지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런 가상 공간을 활보하는 유령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시 속에서 유령의 존재가 있지 않을까 의심한 것이 80년대였으니 근 30년 앞을 내다 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충분히 지은이의 주관적 감정이 스며들 수 있는 소재들을 하루키 특유의 관조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읽는 제가 그 감정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갖게 만들거나 때론 제가 그 감정이 들게 만드는데, 책의 어조는 엄청나게 담담합니다. 하루키 님의 재주가 너무나도 탐이 났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대화하듯이 글을 쓰라고 강조하고, 저 역시도 말과 글이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보니 제 글에 제 감정이 과하게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이승철이 말했죠? 내 노래에 나 혼자 감동하면 3류. 내 노래로 남을 감동시켜야 1류라고. 그런 면에서 제 글은 아직 3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키보드 앞에 앉아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 뜯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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