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르시시즘도 결국 다른 이에 대한 무한 애정이 만든 게 아닐까?
첫번째로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완독일기 prologue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 메시지를 정리해 여러분과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글을 좀 더 영양가 있게 쓰기 위해 채우는 '독서'란 활동이 너무 좋습니다. 비록 읽기보다 쓰기가 더 좋아서 읽기를 게을리 하지만 말이죠...^^
이 책의 주된 골자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상과 이성의 대립'입니다. 이 책은 1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책벌레라 불릴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책에서 접한 지식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친구와의 다툼 과정에서 자신이 있던 곳이 아닌 곳에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크레타 섬으로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만난 조르바가 실질적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오죽하면 조르바를 책 제목에 전면으로 내세웠으니 말이죠. 조르바와 대화하고, 함께 경험하면서 책으로 접하는 세상이 무조건적인 진리가 아님을 깨우치는 과정을 잔잔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와 조르바가 다양한 사람, 장소, 대화를 통해 이 책의 메시지에 다가가는 과정을 보니 어린 왕자가 떠올랐습니다. 어린 왕자 역시 자신이 살던 행성에 있는 장미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깨닫게 되죠?
여러 내용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조르바가 제안한 분서갱유입니다. 읭?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시겠죠? 조르바는 나에게 그간 읽었던 책을 과감히 불태우라고 말합니다. 조르바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만을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진시황 때, 법가가 유교 사상가들의 책을 불태우라고 말하는 분서갱유와 흡사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르바와 법가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법가는 자신의 사상을 타자에게 강요합니다. 조르바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이 주장을 통해 '나'의 경험을 믿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그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 볼 때, 결국 조르바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요새 나르시시스트로 대한민국 여성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김비서가 너무해'의 부회장님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로 그런 괴짜 같은 모습을 한 채로 살아 왔습니다. (관련 내용은 드라마를 통해 확인하세요....^^!)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 외에도 인상깊게 보았던 부분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대조입니다. 실례로 조르바가 만났던 수많은 여자들 중 2명의 슬라브 족 여성들과 관계를 만들었던 경험을 책에서 엿볼 수 있는데, 그 2명 역시 대조적인 분위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첫 여성과의 합방 당시 그 여성 분의 집에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께서 신부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그 잠자리를 신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 여성과의 만남은 자유를 넘어 약간 난장판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여성 분의 온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잔치를 벌였고 잔치의 와중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여성과 조르바가 관계를 갖는 내용을 보고 약간 아연실색했습니다. 이외에도 책 속에서 요소 요소마다 대조적이라는 인상을 줄 만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가장 본질적 가치이자 병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삶과 죽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은 긍정적, 죽음은 부정적이라고 쉽게 선을 긋습니다. 조르바는 죽음을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닿는 단계라고 봤습니다. 상식에 과감히 도전하고, 그 도전을 다른 이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조르바의 힘을 마케팅 과정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