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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에 생기를 불어넣기를

궁전으로 떠나거나, 궁전을 만들거나

by 하리하리

개인적으로 윤종신의 팬입니다. 일상에서 느낄 법한 소회를 포착해 자신만의 감성어린 가사로 재탄생시키는 걸 보면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월간 윤종신을 통해 내놓은 신곡 'My queen' 을 들어 보면 윤종신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아침 일찍 스케줄이 있어 이동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표정이 모두 축 처진 풀잎 같아 보여 그것이 안타까워 노래를 썼단 인터뷰를 보고 오늘의 글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가사 중에 '궁전'으로 떠난다고 회사원들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파트가 꽂혔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같은 현상, 같은 공간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거니까. 이는 흡사 밖이 다 덥다고 해서 지하철 안에 에어컨을 쌩쌩 틀어놓으면 누군가는 덥고, 누군가는 춥다고 하는 거랑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회사 출근할 당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처음 배치받았던 팀은 평택에 있었습니다. 출근 시간이 8시 30분이었는데 경기도 평택은 이동 수단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언제나 차를 끌고 다녔습니다. 차로 이동해 보니 8시 15분에 시동을 켜면 30분에 딱 맞춰 도착한다는 사실을 캐치했습니다. 언제나 그 시간을 딱 맞춰 지켰습니다. 왜냐구요? 출근하기 싫었으니까. 매일 하는 그 일들이 저에게 커다란 자극과 활력을 주지 못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저만의 공간인 자취방에서 오롯이 제 시간을 더 즐기다가 회사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던 건 첫 직장, 첫 팀에서 이동 시간이 현저하게 짧았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다니던 대학교도 우리 집이었던 노원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2번 환승하는 수고로움이 그렇게 싫었으니까요.


그렇게 평택에서 1년 여를 있으니 본사에 있는 팀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팀은 내부 규율이 퇴근은 자유롭지만, 출근 시간만큼은 8시 20분이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이전 팀에서 8시 30분에 익숙해 있던 저는 몇 주간 지각을 밥먹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팀이 바뀌었다고 회사와 일이 좋아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만큼 이내 적응을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퇴사하겠다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재 보았습니다. 8시에 집 문을 나서면 20분에 딱 맞춰 팀장님께 인사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서울은 경기도보단 변수가 많았습니다. 좀 더 넉넉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1분이라도 회사에 일찍 가고 싶지 않았던 저는 그런 위험성을 안고서도 딱 맞춰 출근하는 짓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각은 예삿일도 아니었습니다.


작년 8월 이후에 학교 후배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배는 올 초까지 이랜드 본사에서 일했습니다. 매일 6시에 일어나서 준비해 7시에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그 후배의 영향을 받아 한 번쯤은 저를 바꿀 법도 했지만, 저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저에겐 어떻게 마음을 고쳐 먹으려 해 봐도 전 회사가 궁전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쩔 때에는 그렇게 자신의 일을 만족하며 열심히 주어진 직장에 최선을 다하고, 어쩔 때는 아르바이트생임에도 불구하고 정직원처럼 회사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그 친구의 모습에 존경심까지 일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나만의 알함브라 궁전을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한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궁전이란 제가 있을 때, 무한한 편안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직장과 내가 주어진 일에 대해 마음을 고쳐 먹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글쓰기란 아이템을 바탕으로 저만의 궁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굳이 제 안에서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생기 없이 살아갈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결단했었을 지도 모릅니다.




퇴사 후,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저 혼자만 잘 났다고 빛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삶에 귀기울이고, 그 귀기울여 들은 이야기를 제가 글로 이쁘게 재탄생시켜 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글 덕분에 각자들이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 왔는지 깨닫고,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 인생이 절대 값어치 없지 않구나." 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계기를 만들어 주는 거죠. 이렇게 제 의견에 공감해 주는 친구들과 힘을 합쳐 아름다운 궁전을 함께 만들어 볼 요량입니다. 그 친구들이 제 도움으로 들어가게 될 궁전이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닥 아름답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대들의 뒤에 조성해 놓은 궁전이 딱 버티고 있으니 언제든 지치고 힘들 때면 우리 궁전에 와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제 궁전에 이사 와서 함께 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2년여의 경험을 통해 이런 시도가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월트디즈니 궁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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