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 날이 갈수록 염세적이 되어 가는 듯.
나이가 든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서 순응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만 해도 그 운명에 반발심을 갖고, 나는 그 운명보다 훨씬 더 멋진 삶을 살 거야! 라면서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굴레는 벗어나기 어렵다. 내게 주어진 운명만 그러할까? 아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상대방과의 인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맘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맘이 중요한 만큼 상대 맘도 중요하다. 우리 둘의 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둘을 둘러싼 상황도 중요하다. 여러 가지가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커플이란 거룩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에 따라 다르지만, 거기서 하나라도 삐끗하면, 참으로 돌아가거나 그 길이 결승선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사실 직전까지) 상대를 어떻게든 내 품에 두고 싶어서 정말 엄청 노력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의미있는 결실을 얻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나서 나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아닌 것 같은 것에 손을 뻗는 것을 더 이상 해도 될까? 그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올인을 하고 나서 놓친 것들이 있었다. 그 놓친 것들을 돌아보고, 다시 손을 뻗으려 했지만, 이미 저만치 날아가 버린 상황을 경험하면서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만큼 1초 1초를 소중하게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닌 상황에 매달렸던 걸까? 미련 때문이었다. 그 사람과 조금이라도 잘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사람은 솔직하고 단호하게 진작부터 아니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내가 놓지 못했다. 잠깐이었지만, 설렜던 적도 있었고,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풀어가 보고자 고민했다는 그 사람의 말 한 마디를 보석상자에 보석을 보관하듯 마음 한켠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보석이 결국, (아마 내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미련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못했던 걸까? 안했던 걸까?). 그 사람의 통제만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크나큰 패착이었다. 사실 나는 그 사람을 리드할 만큼의 용기가 없었다. 무조건적으로 그 사람을 기다리면서 그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마음이 나에게로 넘어올 거라고 바랐었다. 이제 그 바람은 잡을 수 없는 민들레 홑씨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제 나는 내 심장이 뛰는 대로 선택을 하기 전에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나의 취향은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에 대한 답부터 하고, 다음 페이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그렇지만,
그 전에 다시 한번 심장을 뒤흔드는 사고가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0.00001% 남아있는 것 보면, 나도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