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지배할 것인가? 시간에 지배당할 것인가?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자리를 비워 약간 적막한 저희 집이 오늘 오전엔 북적(?)였습니다. 이번 주 동안 제 룸메와도 함께 아는 동아리 후배가 집에 왔거든요. 8월 중순에 홍콩으로 교환학생을 떠나 서울에 집을 잠시 처분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당분간 저희 집에 같이 기거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그렇게 그 친구와 첫 날을 보냈습니다. 이 친구, 저와 다르게 규칙적인 삶이 몸에 배여 있다 보니 12시가 조금 넘어 가니 점심을 얼른 먹자고 그리 저를 보채는 겁니다. 이러다 1시가 금방 넘어갈 거라면서(ㅋㅋㅋ)
사실 저는 퇴사 후, 식사 시간을 일정하게 잡지 않았습니다. 오후 4시에도 밥을 먹고, 아침도 거르기 일쑤이고. 그러나 저는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아는 시간에 밥 대신 잠을 청합니다. 잠을 자면서 저를 refresh 시키는 거 같더라구요. 누군가 그랬죠? 불규칙적으로 식사하면 살찌고 건강을 해칠 지 모른다고. 그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게 아니라 과식하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삶이 문제가 아닐까 하고 말이죠. 실제로 어떤 연구에서도 언제 음식을 섭취하는가보다는 과식이나 칼로리가 과다한 식품을 먹는 게 더 문제라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이 녀석과 식사하러 나가다 보니 오늘 글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식사 말고 시간으로요!
아이유가 부른 노래 제목으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영화, '모던 타임즈'입니다. 공장제 기계 공업이 태동해 한창 발전하고 있었을 때, 그 모습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만, 그 때는 더했죠.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기 못하도록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노동자들을 소위 굴리는 공장에서 인격이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엄청난 철학자나 영화 평론가가 아니다 보니 더 디테일하게 이 영화를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이들은 공장의 부품에 불과했고, 그 부품은 한치의 오차 없이 움직여야 생산 계획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위 화이트칼라들이 득세하게 된 현재의 노동 시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주 52시간 근무를 반드시 지켜야 해서 회사들은 직원들을 6시에 억지로라도 퇴근 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전처럼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점심 시간이 단축되거나 퇴근해서도 노트북을 챙겨 나가서 집에서 일하거나 하는 등의 압박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의 지인인 모 마케터 친구는 점심도 먹지 못한다고 일한다면서 점심시간이라도 보장된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 나고 회사지, 회사가 사람의 앞에 서서 사람의 기본권마저 좌지우지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현상이라고 저는 봅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24시간 중 일부를 근무 시간에 투자해 돈과 교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몇십 년을 거치며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어느 사람이든 그 일을 하더라도 대동소이한 성과를 냅니다. 그렇게 회사가 존재해야 구성원들은 자신에 대한 생각을 그리 깊게 하지 않고 매일 매일 일하는 삶에 집중합니다. 제가 읽던 <마케터의 일>에도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님께서 "내가 휴가를 가도 회사가 굴러가게 해야 한다." 고 하셨는데요. 뭔가 압박적 분위기에서 나온 말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이 말이 저는 무섭게 들렸습니다. 각 구성원들의 시간이 회사에 볼모로 잡혀 있는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나 저의 가장 큰 강점인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지금의 환경에 책임을 지는 것도 저 자신입니다.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합니다. 매일 저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도리입니다. 어제 같은 경우도 어제 제가 실질적으로 일한 시간은 밤에 한 방송 시간 외에 오후 3시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만큼 저는 정말 집중해서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시간당 생산성은 그 누구보다 높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쓰고 나면 뿌듯합니다.
사실 맨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와 비교해 보면 하나의 글을 만들어 내는 데 들어 가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 훨씬 길어졌습니다. 소재의 고갈도 있고, 이미 썼던 소재들이 많아지다 보니 더욱 일상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뒤따르고. 이것만이겠습니까? 제가 쓴 글을 보는 독자들이 차츰 늘어가면서 제가 머리를 짜내 내놓은 자식들이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생기면서 글 한 편을 쓰는 데 시간이 처음에 비해 배는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시간은 오로지 저를 위한 시간이라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저와 같은 행복을 그들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