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를 시작하며
사실 영화를 엄청 즐겨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산업적으로 보면 한국의 영화 시장은 굉장히 큽니다. 세계 유수의 영화사들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을 선택하는 것만 보더라도 한국이 중요한 테스트 마켓임은 부인할 여지 없습니다. 저는 하나의 흥행 영화를 만드는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관객! 관객이 많이 봐야 그 영화는 수지 타산이 많이 남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에만 해도 감독, 배우를 필두로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스태프가 투입됩니다. 그들에게 모두 떨어지는 돈이 있어야 그 영화는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예술도 배 곪는 게 해결되는 것이 우선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배를 채워 주는 것은 관객의 선택입니다. 둘째, 극장!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극장에 걸리지 않으면 영화의 흥행 확률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나라 극장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멀티플렉스 회사들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CGV와 같은 데에서는 다양성 영화를 거는 전용 극장을 개설해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볼 거리를 늘려 주고는 있지만, 전체 스크린의 대다수는 상업 영화에 몰려 있고, 그 중에서도 흥행할 건덕지가 높은 영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작년 봉준호 감독이 옥자를 넷플릭스에서만 단독으로 개봉해 극장 권력에 좌우되지 않으려는 모험적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일회성으로 끝났습니다. 셋째, 배우! 흥행을 보장하는 영화에는 명배우들이 나옵니다. NBA에서도 우승을 원하는 선수들이 페이컷이라고 해서 한 팀에 뭉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샌 스타급 배우들이 한 편의 영화에 같이 나오는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뭉쳐서 만드는 영화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집니다. 좋은 배우들에게 당연히 시나리오가 몰릴 테니 그들이 그 중에서 고른 영화는 얼마나 완성도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넷째, 저는 평론가도 다른 요소들 못지않게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관객, 블로거, 왓차 리뷰어 등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 영화를 보고 감흥에 대해 글로 남깁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조용한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가 없을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리뷰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동진 기자님이 계시죠. 이동진 기자님을 디스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닙니다. 그 분이 쓰시는 어휘나 표현 등은 분명 지식인의 smell이 잔뜩 풍겨납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우리랑 똑같은 관객입니다. 다만 이동진 기자님과 같은 경우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평론가들이 평단이란 이름 아래 모여서 영화에 평가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호평이든 악평이든 그들이 하는 평가는 관객들이 영화를 고르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제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 의식의 총부리는 평론가들에게 겨누어져 있습니다. 평론가들이 선두에서 이끄는 인텔리적 영화 평이 관객에게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과연 혹평을 받아 왔던 영화들이 정말로 혹평을 받을 만한 영화인지 재검증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른바 우리가 보는 영화들을 비스듬한 시각에서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그런 영화의 대표적 주자로 저는 야한 영화를 듭니다. 야한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그릇된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모든 영화가 2시간 내내 야한 장면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영화는 야동입니다. 야한 장면이 들어가면서 보통은 감정의 격앙을 표현합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속 야한 장면이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설사 그런 영화들일지라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겠습니다. 모든 영화엔 감독의 색깔이 들어가 있고, 그것을 짚어내 본다면 우리는 그 감독과 하나의 지점에서 만납니다.
제가 야한 영화 일기를 굳이 쓰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아가씨>를 만들며 이런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레즈 신이 사이트에서 엑기스로 회자되지 않게 하겠다." 섹스신이나 베드신은 잘못 비화되면 호사가들이나 네티즌들에게 조리돌림당하기 십상입니다. (여기서 조리돌림이란 예술이나 영화 흐름에 대한 이해 없이 그 장면만 자극적으로 따로 떼어 사람들 사이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야한 씬을 하나 보시더라도 그 씬을 다 보고 나면 전체 영화를 모두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적어 봅니다. 그리고 제 매거진이 좀 더 규모가 커져서 이 매거진을 믿고 신인 영화 감독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를 바랍니다. 어떤 영화든, 결과가 관객들의 외면을 받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영화들 모두 찾아내 아름답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안에 든 내용물이 조금은 별로라고 평가받더라도 그 내용물을 담는 쇼핑백 만큼은 구찌 쇼핑백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제 영화 리뷰 덕분에 개봉 당시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영화들도 관객에게 다시 입에 올려지고 역주행을 했으면 합니다. 제 리뷰가 그럴싸해서 봤다가 돈낭비했다며 저를 욕하더라도 그 욕은 다 저 혼자 받겠습니다. 욕 좀 먹으면 어떱니까? 저를 방패 막이 삼아 창작의 자유가 좀 더 적극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떠오르는 영화들이 벌써 몇 개 있습니다. 그 당시 호평을 받은 영화도 있고, 외면받은 영화도 있습니다. 하나같이 그 영화에서 표현하는 러브씬의 수위가 문제되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런 장면의 수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흐름과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너그러운 시선 갖고 지켜 볼 테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